2장 쌀의 목마름으로
가끔, 나는 쌀을 씻을 때 멈춘다.
첫 물을 따라내고 두 번째 물이 하얗게 흐려질 때,
그 속에 오래된 내 얼굴이 비친다.
젖지 않으려 버티던 시절의 나,
누가 불려주기를 기다리던 마른 쌀알 같다.
예전엔 쌀을 대충 씻었다.
배고픔을 달래는 일이었지, 마음을 달래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손끝에 닿은 쌀알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매끈하고 차가운 감촉.
물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내는 작은 소리.
그건 마치 말없이 울음을 참고 있는 사람들의 속삭임 같았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쌀은 썩지 않기 위해 마르는 존재였다.
바짝 말라야 한다는 건, 오래 버티겠다는 다짐이었다.
그건 내 지난 삶과 닮아 있었다.
감정을 말리지 않으면 썩을 것 같아서,
나는 오랫동안 마음을 햇볕에 널어 수분을 날렸다.
사람이 아닌 바람에게 기대며 그렇게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시 물을 만났다.
쌀을 불리듯 마음을 불렸다.
손끝에 닿는 변화 — 불어 오르는, 살아나는,
그 감각이 내 숨을 멈추게 했다.
몇 분 전만 해도 단단하던 쌀알이,
금세 부풀어 오르며 투명하게 변했다.
그건 회복의 형태였다.
쌀의 허리가 불룩해지는 걸 보며,
나도 내 안의 마름이 천천히 풀리는 걸 느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목마름은 결핍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신호라는 걸.
그 순간 나는 체육관의 풍경을 떠올렸다.
쇳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는 곳,
숨과 근육이 박자처럼 맞물리는 그 시간.
거울 앞에 선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리듬으로 고독했다.
어깨를 펴고, 복부를 조이고, 호흡을 세는 일 —
그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마음을 다시 세우는 의식 같았다.
나는 무게를 들 때마다, 쇠봉의 차가운 감촉이
내 안의 불안과 닿는 걸 느꼈다.
땀 한 방울이 팔을 타고 떨어질 때마다
오래된 두려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근육을 만드는 데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마음은 그보다 더디게 단단해진다.
그곳에서 우리는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무게를 들어주는 사람들 같았다.
철 냄새, 땀 냄새, 단백질 셰이크의 단내가 섞인 공기 속.
쇠봉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공간이 울렸다.
그 울림이 마치 내 심장 같았다.
거울 속에 서 있던 나는
허벅지를 조이는 레깅스 속에서,
근육보다 마음을 단련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조이던 이들이었다.
몸을 깎아 세우며,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어둠을 품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체온에서 이상한 친밀함을 느꼈다.
쌀이 불어나는 것처럼, 그들도 자기 안의 어둠을
조금씩 부풀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부러워했다.
그들의 탄력, 그들의 절제, 그들의 ‘견디는 방식’을.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의 회복은 근육이 아니라, 감정의 물기로 이루어진다는 걸.
말라붙은 마음에 물을 붓고,
다시 젖는 나를 허락하는 일.
그게 나의 운동이었다.
내 3대 운동은 스쾃,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가 아니라
참기, 울기, 그리고 다시 쓰기였다.
쌀은 결국 밥이 된다.
뜨거운 김을 내며,
함께 먹는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 여정을 생각하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조금 덜 외롭다.
썩지 않으려 애쓰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기꺼이 부풀어 오르는 쌀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그릇에 담겨,
따뜻하게 먹히는 삶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쌀을 씻는다.
첫 물을 버리고 두 번째 물에서 잠시 멈춘다.
쌀알들이 고개를 들 때,
나는 속삭인다.
“이제 젖어도 돼. 마음껏 목을 축여.”
그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내 안에서도 소리가 난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생의 소리.
그건 물이 쌀알을 부풀리듯,
내 마음을 부풀리는 소리다.
쌀이 불어나는 동안,
나는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