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메뉴 델 디아를 먹어보다.

by 널리

#36


아침 식사를 걸렀으므로(? 원래 잘 안 챙겨 먹지만 순례길 와선 커피 마시는 재미로 챙겨 먹는) 카페에 슬쩍 들어갔다. 5~6명의 사람들도 적당히 소란스럽다. 커피는 금발의 잘 생긴 청년분이(외모 평가하는 걸 좋아라 하지 않지만 아침부터 아름다운 청년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던) 아주 맛난 커피를 내려줬다. 거기다 조그만 빵 두 개도 아주 맛있었다:) 크지도 않아서 딱 좋던!!!!


1 €의 행복을 오감(?)으로 느끼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가 아주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우의를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순례자의 일상이란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다.

길을 걷다 빗줄기가 거세어지기에 정자 같은 곳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정자에는 나보다 먼저 오신 나이 지긋한 세 분이 앉아계셨다. 힘든 마음 달래려 어제 한국인 부부가 나눠줬던 귤을 꺼냈다. 두 개, 한 개은 맞은편에 계신 분에게 나눔 해드렸더니 괜찮다고 하셔서 하얀 옷 입은 분께 나누어 드리고(결국 나눠드심) 나는 혼자 하나를 까는 중에 또! 또! 또! 크리스틴이 지나가길래 귤 세 조각을 나눔 했다. 귤이 엄청 달았다. 백팩에서 이틀간 숨 죽은 듯 있더니 당의 농도가 숙석이 되었다고나 할까, 엄청 달았다. 크리스틴이 무릎은 괜찮냐고 자기 백팩 앞 주머니 열면 크림 있으니 발라도 좋다고 하길래 꺼내서 쓱쓱, 고맙단 인사를 끝으로 크리스틴과 동행하던 분을 보내고 함께 귤 까먹던 사람들과 대화가 시작됐다.

하얀 옷 입은 분의 이름은 유디스, 영어로는 주디스, 헝가리분들이시란다. 유디스는 아주 많이 무뚝뚝하신 남편분과 순례길을 올랐고 연두색분은 스페인에 거주하고 계시는 헝가리에서부터 쭉 알고 지내오는 친구분. 친구분은 영어를 못하신다기에 헝가리어랑 스페인어만 해도 두 개인데 충분하지 않냐며 괜찮다고 그랬다, 내가. 아... 난 스페인어 너무 배우고 싶은데 ㅎㅎㅎㅎㅎ 사진을 찍고 교환을 하고 또 여정을 떠났다(이 분들도 이 이후로 몇 번 더 마주침).


산티아고가 가까워져 갈수록 좀 더 종교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오래된 성당이라든지, 아래와 같은 공동묘지라든지...


가다가 너무 힘들고 밥시간이라(내 배 시계는 왜 이리 정확한 것인가, 덴마크에서의 불규칙한 생활은 운동을 충분히 안 해서였음을 길 걷다 깨달은 사람), 잠시 순례길을 벗어나 식당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어간 식당, 여기저기 손님들이 앉아있다.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남자/여자 화장실이 어느 쪽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뒤에 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오른쪽으로 표시를 해준다. 그라시아쓰! 를 하곤 들어가서 옷매무새와 정신머리(? 너무 힘들어서 영혼 가출 상태) 점검하고 나왔다. 그리곤 식탁으로 돌아가 의자에 앉아서 주위를 슥하고 둘러보니 아직 점심식사 시간이기엔 이른 지 와인이나 맥주만 들이켜고 있는 사람들, 아... 이 시간 때에? 멋지다 ㅎㅎㅎㅎㅎ 물론 나이가 좀 있는 분들 위주였긴 하지만...

'뀌에로 메뉴 델 디아 포르 파보르(메뉴 델 디아를 주세요, 부탁합니다)'라고 했더니 메뉴 델 디아 메뉴를 가져다준다(난 처음에 메뉴 델 디아가 순례자들을 위한 메뉴인지 알았는데, 그냥 menu of the day라고 그날의 특별식 같은 개념이었다).


그래서 첫 번째로는 치킨 파스타, 두 번째로는 대구 요리를 주문했다. 와인(레드/화이트 중 고를 수 있다)을 바로 서빙해 준다, 병째로. 레이블이 없는 병 와인을 가져다줬는데 입에 꽤 맞았다. 달콤한 와인을 그리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이리 드라이한 와인이면 너무 좋다:)


치킨 파스타의 가슴 따뜻한 맛을 즐기고 나니 대구 요리가 짜잔 하고!!!! 너무 배가 불러 감자는 손도 못 대고 ㅎㅎㅎㅎㅎ 거기다 디저트까지 준다. 말이 안 통해서 그냥 아무거나 골랐는데 초코가 레이어드 된 아이스크림, 배가 터질 것 같은데 다 먹고 왔다. 와인 한 잔에 얼큰(?)해진 기분으로 다시 길을 걸었다.

거의 처음 내리는 비에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순례길의 차분함을 느끼면서 Iria Flavia에 도착했다.


순례길에서의 더 생생한 이야기는 아래의 유튜브로!

https://youtube.com/@humanveings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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