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사색을 즐기다.

by 널리

#35


유튜브를 찍으며 서있었더니 저 멀리서 누군가 알베르게 쪽으로 걸어오길래 수신호로 여기로 오는 게 맞냐라고 물었더니 맞단다! 빙고! 캐나다에서 온 그들은 아주 흔쾌히(?)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You saved my life'라며 괜히 오버를...


돌아와서 봤더니 저녁 식재료를 이것저것 사 와서 한상 가득 차려 먹던... 알베르게에서 저렇게 제대로 차려먹는 걸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훗날 다시 순례길을 걷게 된다면 도전해봐야지 싶은!

순례길을 걷다 보면 정말 만나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마음이 맞고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나가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몇 번을 마주쳐도 그냥 눈인사만 하고 긴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서 Oia(가장 좋았던 알베르게)에서 같은 방에 묻고 통성명도 했지만 굳이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게 되던 미국 아이. 이름도... 까먹었다. 순례길과 인생을 자꾸 비교하게 되는 게 이런 점이다. 인생에서 아무리 만나도 인연이 되지 않는 사람들, 한 번만 만나도 뭔가 마음이 통해서 계속 그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지는 사람들. 그 미묘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란 생각을 해본다. 그게 순례길과 인생에서 우리가 잘 조율하며 살아가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리곤 일찍 잠에 들었다.

일곱 시 반쯤 일어나 여덟 시쯤 출발을 했다. 약간 흐린듯한 날씨, 비가 온다고 예보된 날이었기에 조금 힘들 수 있겠다 생각하며 날씨 요정의 힘을 발휘하자 생각하며.


별 건 아니지만 기분 좋게 하는 스마일 표시가 기분을 업되게 한다. 흐리지만 비가 막 오는 건 아니라 하루종일 우의를 입을 일이 없었다. 가방에서 잘 쓰지 않았던 곳에 우의를 넣어두곤 찾질 못해서 안 입은 게 아니다! 이땐 우의를 어디다 잃어버렸든지 잘못해서 우편으로 보내 버린 줄 알았다. 작은 가방 안에서도 이리 물건을 못 찾는 일이 발생할 줄이야. 알베르게 도착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그러지는 않았을 텐데(잃어버리거나 우편으로 보냈거나) 싶은 마음에 가방을 다 뒤졌더니 잘 쓰지 않는 배낭 앞부분에 수프며 과자며 잘 쓰지 않는 물건들과 아주 가지런히 밑바닥에 끌려있던 우의:) 없어졌다고 생각했을 땐 얼마나 아깝던지... 그도 그럴 게 마음에 드는 무늬를 골라서 독일 아마존에서 받은 거라 한 번도 입지 못하고 어디다 헌납하는 지경인 거 아니냐란 생각에...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잘 챙겨놓으면 찾기가 도리어 쉽지 않다(?).


우중충한 날씨에 무릎은 삐걱거리고 순례자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 일렬종대로 걷는 길은 정말 무념무상의 마인드로 걷게 하는 환경을 제공했다. 조용히 내가 왜 길에 서있는지, 걷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다.


순례길에서의 더 생생한 이야기는 아래의 유튜브로!

https://youtube.com/@humanveings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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