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킬리만자로 등반 1-5

by 널리

#Kilimanjaro5

타인이 뒤척이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밤 동안 너무 추웠기 때문에 눈을 뜨자마자 자리에서 바로 일어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공간에 있는 다른 누군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를 기다린다. 말소리가 들리고 '이제는 일어나야겠다.'라는 생각에 몸을 한껏 웅크리고 침낭 속에 앉는 자세를 취한다. 눈만 껌뻑껌뻑거리며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good morning'이라고 인사를 해본다.

일어난 순서대로 각자의 포터들이 간단히 세면 할 수 있는 물을 한 바가지씩 가져다준다. 일행과 나도 기다리고 있었더니 가져다줬는데 물 양이 섭섭하다. 나중에 좀 더 많이 가져 다 달라고 해야겠다며 화장실로 향한다. 간단히 눈곱만 떼는 수준으로 세수를 하고 밥을 먹기 위해 식사가 차려진 곳으로 향한다. 옆에는 어제 인사를 나눴던 남아공에서 왔다는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참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다. 남아공 사람이지만 지금은 아부다비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아부다비면 항공사 관계자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렇다고 했다. 아내분이 남편분보다 많이 젊어 보여서 신혼인가 했는데 애도 셋이나 있단다. 외국인치고 엄청나게 동안이다.

아침엔 간단히 빵과 계란 프라이, 햄, 과일과 커피가 나온다. 간밤에 추위와 사투를 벌였더니 뭐든 맛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입맛이 떨어진다는데, 웬걸. 입맛이 자꾸 돈다.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산 오를 준비를 한다. 내 가방에는 여권과 간단한 서류들, 바람막이, 전원을 꺼놓은 휴대전화, 다량의 간식과 비타민, 물, 물티슈 등이 들어있다. 옷차림은 청바지 차림의 어제와 달리 카고 바지에 짧은 티 위에 긴 후드티를 겹쳐 입었다. 모자는 어제와 같이, 후드티와 나름의 깔맞춤을 겨냥한 놈으로 썼다. 같은 hut에서 잔 미국인 여자분이 어제 게이트에서 청바지를 입고 있어 놀랐었단다. 그래도 the! Mt. Kilimanjaro에 웬 청바지... 이런 느낌이었겠지. 나는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실에 놀라 '나 진상 부릴 때 본 거야?'라고 물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어쨌든 준비는 끝났다. 가이드에게 가서 출발하자고 했더니, '곧 더워질 텐데 후드티는 벗지 그래?'라고 권유했지만 당장의 추위가 싫어 일단 출발하자고 했다.

우리는 일행 중 마지막으로 출발했다. 남아공 부부 2명의 일행과 미국인 여자 두 명의 일행, 그리고 우리. 길을 나서며 오늘은 얼마나 힘 드려나 하는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남아공 부부는 다른 곳을 둘러보고 온다며 다른 길로 빠졌다. 저 두 사람은 지금부터 산행용 지팡이를 짚고 있는 걸 보니 왠지 모를 전문가 느낌이 난다. 아침이라 몸이 가볍다, 조금 속도를 올려본다. 미국인 여자분 2명의 일행을 제치고 쭉쭉 올라간다.​


계속 걷다 보니 허기도 지고 목도 마르다. 산행 중간에 허허벌판에서 잠시 쉬다 가자고 한다. 그 자리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어제와 비슷한 형태의 도시락이다. 샌드위치와 쇼무짜(삼부사?)를 천천히 먹고 있자니 미국인 여자분 2명이 차례대로 지나친다. '왜 여기서 밥 먹고 있어?'라는 눈빛을 건네며... 먼저 가란 얘길 하곤 사과와 치킨, 삶은 계란과 망고 주스를 주섬주섬 챙긴다. 조금 있다 먹을 식량은 비닐봉지에 담아 내 가방에 담고 파운드 케이크 조각과 런치 박스는 가이드에게 건넨다. 식사를 했더니 가방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다시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미국인 중 나이 많은 여자분을 지나친다. 어깨를 톡톡치고 'present!'라며 사탕 한 개를 건넨다. 조금 지쳐있었는지 'Mmm, thanks!'라고 하며 받아 든다. 조금 더 속도를 올려본다. 어제와는 달리 주위에 나무와 풀이 많이 없어지는 걸 보니 고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몸소 체감한다.​


저 앞에 간이 식탁과 의자가 보인다. 원래 점심식사를 하는 포인트인가 보다. 미국인 중 젊은 여자분도 있다. 인사를 건네며 자릴 잡고 앉는다. 남겨뒀던 치킨을 꺼내 한 입 베어문다. 캬~아, 이 맛이지. 한국 치킨과는 비교할 수 없이 살 부분이 적고 질기지만 약간 탄 듯이 구운 치킨 본연의 맛과 '산'이라는 장소가 합쳐져 엄청난 맛의 향연으로 미각을 즐겁게 한다. 계란을 식탁에 도르륵 굴린다. 잘 까지질 않는다. 잘못 삶은 것 같지만 껍질을 다 깐 후 한 입에 우걱우걱 씹어 넘긴다. 이것도 맛있다. 텁텁해진 입을 망고 주스로 적시니 이 어디 9첩 반상 부러우랴! 정신없이 먹다 보니 남아공 부부도 도착을 했다. 다른데 들렀다 왔다면서도 속도가 빨라 금세 우리를 따라잡았다. 역시 괜한 전문가 느낌을 내뿜는 게 아니었다.

2016.10.23일의 기록.

이전 15화#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