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깊은 여운을 남기고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야 예쁜 것임을
네가 미안하다며 찾아왔던 날을 기억한다. 미안하다며 나를 사랑한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속삭였었던가. 하지만 이미 한 차례 비참한 사랑을 경험한 내가 순수한 마음을 되돌리기엔 내가 너무 지쳐 있었고, 그럴 순수하게 사랑을 할 자신도 없었다. 이기적 이게도 나는 널 놓을 자신도 없었고, 아직 사랑하기에 네가 내뱉는 달콤한 말에 기대어 2일 정도를 함께 지냈었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스쳐 갔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만, 아직 용서할 마음도 이전처럼 순수하게 좋아할 수도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고, 결국 이별을 고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날 좋아할 수 있다면, 그때 날 찾아 달라고. 나는 아직 너를 용서하기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고.
하지만 나는 너에게 사랑했던 애매한 인연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네가 찾아와 더 이상 찾지 말라는 짧은 한 문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너를 다시 볼 기회도 놓친 것이다. 더 많이 좋아한 사람이 손해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를 그제야 실감했다. 피해받은 것도, 죽도록 힘들었던 것도 전부 나였는데 이별 후에 찾아오는 허무함과 후회감 역시 내 몫이었다. 아팠다.
그런 너를 2년이 넘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아직까지 놓지 못해 차마 좋아한다는 간단한 말의 무게를 체험하고 있다. 간단한 그 말이 너무 무겁게 자리 잡혀 버렸다. 고작 4글자에 불과한 단어인데도 그게 참 어려워져 버렸다. 경험에 따른 상처의 잔상이겠지. 시간이 지나 다시 되돌아보니 네가 사랑한 내 모습들을 스스로 잘라낸 것이었다.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에 나는 네가 다시 좋아하지 못할 사람이 되었다. 아이 같았던 모습도, 감정 표현에 꽤나 솔직했던 모습도 이젠 비어있다. 나는 더 이상 네가 좋아했던 모습의 내가 아니야.
그 시절의 우리의 기억은 2년 동안 참 많이도 소실되어 있었다. 이젠 떠올리기 위해 애를 써 보아도 떠오르는 것은 단편적인 장면들 뿐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억을 꼽자면 너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서 버스를 타고 친한 언니에게 행복하다고 했던 것과 외면하고 싶었던 모든 사실을 알아차리고 정신없이 공책 한 면에 적은 글은 맥락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울면서 적던 내 모습이다. 처음에는 비극적인 것과 행복한 기억이 뒤섞여 한 번씩 떠오르면 잔상을 지우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 행동을 수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마주치더라도 겨우 너에게 잘 지내냐는 말 한마디를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나는 너를 만나지 않는 시간 동안 사랑이라는 감정은 전부 지워서 가능했던 걸지도. 하지만 그날 공책에 적었던 글은 여운에 취해 두 번 열어본 것이 전부였고, 그 뒤로는 다시는 열지 못했다. 이건 아직 널 잊지 못했다는 증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