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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린 Nov 22. 2022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울고 싶었다. 그러면 날 위해 울어주기라도 할까 봐. 나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자 행복한 사람이었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자 동시에 웃음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행복해 보여야 다. 해서 인위적인 이미지에 나 자신을 투영시킨다. 그렇게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망가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위해 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아무렇지 않게 넘겨짚던 것들이 한순간에 밀려왔다.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사람이 싫었고, 내가 처한 상황이 싫었다. 그냥 세상이 흑백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 감정과는 관계없이 시간은 똑같은 템포로 지나간다. 반복되는 일상과 요동치는 감정은 나를 모서리에 가뒀다.


인간이라면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기에만 급급했다. 많은 사람들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 싫었고 도망칠 곳이 없는 사실이 더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도피성 잠이었다. 10시간 이상 밤에 자고 일어났어도 활동하는 시간 내내 잠에 빠져 살았고, 나중에는 꿈과 현실조차 분간이 되지 않았다. 깨어 있었다가도 눈을 떠보면 잠을 자고 있었던 황당한 일도 자주 일어났다. 인간관계 또한 정상적이지 못했다. 어울리기 힘든 인간임을 깨닫고 인간을 좋아하지 않게 되면서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잘라내기로 했다. 그때부터 나는 기행을 일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주변인들에게 나라는 사람에 대해 물어본다면 하나같이 비슷한 대답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사람. 이런 말이 나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로서 좋아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 그저 겉치레를 좋아하는 사람이 꼭 필요할까. 어떤 기행을 일삼더라도 그냥 그 자체로 내 모습이라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래서 나는 속된 말로 나사 빠진 사람처럼 굴었다. 해맑은 아이처럼 이유 없이 갑자기 웃기도 하고 사고뭉치처럼 사고도 치면서도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모순적인 모습을 한 곳에 모아놓은 것처럼. 그러다 보니 여러 개의 자아가 뭉쳐있는 사람 같다는 말도 여러 번 듣기도 했다. 그 모습 또한 내 모습 중 일부일 뿐인데.




비난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모두에게 미움받되 내 사람에게만 사랑받으면 그만이지 않을까. 굳이 미움을 사는 이들까지도 모두 수용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나대로 살되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면 그만이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끼워 맞추는 건 내 모습이 아니라 허물을 좋아하는 것밖에 안될 텐데. 신뢰조차 못하느니 처음부터 미움받는 편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나만 피곤해질 텐데 이득 없는 행동은 취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거치다 보니 사랑받고 싶다는 기대도 사라지고 기대가 없으니 오히려 소소한 것들에 대해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평범하고 당연한 행동들이지만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기에 날 받아주는 지인들이 고마웠다. 이런 사람밖에 못 되는 것이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내가 유별난 사람이어서 괜히 잘 지내는 사람을 망쳐놓은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고 괜한 죄책감에 시달릴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나를 위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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