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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의 앤 Jun 24. 2024

대수롭지 않은 우울감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인처럼 느껴지는 이기심 

2주 전, 20여 년간 연락하지 않고 지냈던 사촌오빠의 갑작스러운 사망소식을 들었다. 

40세도 안된 오빠가 오밤 중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았다. 사망소식을 접했을 때, 사회화된 방식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는 했지만, 그 순간 나는 정말 어떤 감정이었는지, 나조차도 모른 채 저 말을 했을 뿐이었다. 

비록 연락하지 않고 지낸 지 무려 20년이나 지났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의 소식은 간간히 아빠를 통해서는 들었을 뿐, 성실하게 회사생활하면서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고 있던 오빠가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식은 나랑은 관계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내 머릿속은 그런 생각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며칠 내내 20년간 한 번도 봉인해제하지 않았던 기억의 부분이 봇물 터지듯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을 때마다 무작위로 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렸을 롤러스케이트장과 오락실을 데리고 다니며,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은 천 원짜리 지폐로 나랑 동생에게 빠삐꼬와 스쿠르바를 사주었던 사촌오빠의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랐다. 울음이 나진 않았지만, 몸속에 저장되어 있던 모든 수분을 빨아들일 만큼의 슬픔과 우울감이 몇 주째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나 스스로를 제멋대로 진단하자면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기심에 가까운 우울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등바등 살아도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육체의 시간이 다하면 땅과 하늘에 나의 보잘것없는 육신은 묻히고, 남아있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기억 속에도 며칠간 각인은 되겠지만 결국 사라지겠지. 인간이란 살아감으로써 환경오염만 시키는 존재이니, 내가 사라지면, 지구는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란 희한한 생각이 한편, 그리고 다른 한 켠에서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남겨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그리고 그 우울감이 나의 정신이 지배하다 보니, 우울감으로 물든 소용돌이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누가 불러도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내 옆에 떠들거나 웃는 사람들이 모두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나의 슬픔도 사실 흉내에 불과한 얄팍한 감정에 불과한데, 내 주위의 사람들이 '즐겁다'라고 또는 '재밌다고' 느끼는 것들은 하나같이 시시했다. 


맞다. 모든 것이 시시하다. 

먹고 싶은 것도 맛있는 것도 없다. 까먹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까. 무엇을 먹어도 마치 먹어본 적도 없는 지점토와 같은 회색빛의 맛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 그냥 無에 가까운 것들이 나를 옭아매고 있다. 내 신경세포를 교란시키는 유튜브의 쇼츠도, 술도, 바(Bars)도 그 무엇도 나를 자극하지 못한다.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도, 마치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라는 비웃음과 빈정거림으로 부인하며, 마치 사랑의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염세적인 인간처럼 변해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화가 나는 것도 아니며, 눈물이 나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20년도 더 된 그 옛날, 20세기 한 시대에서 '10살'의 내가 나보다 두 살 터울의 사촌오빠와 지냈던 시간들이 어렴풋 기억이라는 포장으로 내 머리 한편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 것들이 예상치도 못한 일로 죄다 봉인해제가 되어 나의 감정도 모두 송두리째 사라진 느낌이다. 마치 쓰나미가 휩쓴 어느 평화로운 해안가 마을처럼. 나의 껍데기 속 상황은 그야말로 심적 재난상황이다. 나의 눈은 생명을 잃은 길바닥 속에 죽은 검정 새처럼 검게 변해가고 있고, 내 뇌의 주름들은 이성의 공세 속에 감정의 주름을 펼치고 있다. 감정의 주름들이 점차 사라져 가니 마치 의도적인 사이코패스가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두려움도 찰나에 불과할 뿐, 모든 것들은 '완전 포기' 상태에 농락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다 이기적인 우울감이 양산한 결과인 듯하다. 


가끔 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면, 슬퍼할 사람이 있을까란 생각을 한다. 그들의 슬픔 또한 중경상림에 등장한 '사랑의 유효기간'처럼 조금 길거나 짧지 않을까. 이 모든 슬픔은 억지로 감정을 들춰내는 이기심에 불과한 감정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좀처럼 머리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모든 것이 시시한 요즘, 이 시간들이 지나면 조금 더 의연한 사람이 되겠지란 약간의 희망이 있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바라거나 소망하는 것도 딱히 없다. 풍요로움 속에 이기심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빈곤함과 사악함이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미약한 나의 존재가 그 어떤 감정을 느끼거늘 나 조차도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는데, 무슨 소용인지. 


그냥, 우울감과 슬픔도 이기적이라고 느낄 뿐. 그 어떤 정당화할만한 형용사가 필요 없다. 그냥 다 이기적인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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