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옳음이 오늘도 옳을 거란 보장이 없기에 필요한 윤리의 절대성
고등학교에 다니던 당시 윤리와 사회문화 과목을 굉장히 싫어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내게 그 과목들은 말장난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고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 논제를 다룰 때면 명확한 답 없이 두루뭉술하게 이것도 옳을 수 있고 저것도 옳을 수 있다는 식의 정리가 굉장히 불편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역사 과목도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 역사적 사건을 다루기 시작하면 정답이란 없는 아주 심도 있게 모호해지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껏 그런 건 아니고, 공부를 이어오면서 세상을 알아가고 사고가 깊어져 감에 따라 그것들은 아주 흥미로운 것들이 되어 있다.
옳고 그름을 나누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선이라는 신념이 누군가에게는 악이 되어 맞부딪히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또는 과거에는 선이었으나 현재는 악이 된 행위, 제도, 개념따위도 무척 많다. 특히 지금처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세상에서는 어제의 선이 오늘도 선일 거라는 보장이 없다. 단언컨대 윤리의 기준만큼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것도 없을 것이다. 이는 지극히 상대적이고, 역사의 흐름과 함께 다변화해간다.
그렇기 때문에 때론 윤리가 편견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지나간 윤리, 즉 죽은 윤리라면 말이다. 그러나 '편견'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여전히 윤리라고 믿는 다수의 개인 또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과거에 지극히 당연했던 사회적 규범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조금 단순화해서 현재를 보자면 개인의 기준이 윤리가 되는 시대이다. 나의 기준에 나만 맞춰 사는 시대, 당신의 기준에는 당신만 맞춰 사는 시대. 물론 누구나, 개인이나 집단이나 그들만이 갖는 입장과 사연은 있다. 그중 대부분은 듣고 보면 아주 그럴싸하거나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들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윤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데, 그게 과연 무엇이냐는 말이다. 서로 상충하고 대립하며 공존하지 못하는 각자의 신념을 하나의 규범으로 묶을 수 있는 절대적인 윤리, 그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말한다. 시대가 변하면, 인간 삶의 양상도 당아지고 이에 따른 윤리의 기준도 변한다고. 그렇다면 묻고 싶다. (지금의 윤리를 기준으로) 야만의 시대에 살았던 '인간'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다른가? 그러니까 결국 같은 인간, 즉 전 인류에게 적용되어야 할, 모든 것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절대적 가치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며, 실제로 그것은 존재한다. 자연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 자연적이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것들 말이다(아마 이에 대해서도 의견이 수만 가지로 갈릴 테다). 윤리의 가장 기초적인 기준은 거기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찌 됐건, 인류는 진보했고, 품격은 올라왔으며, 윤리의 기준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윤리적 외침이 본질에서 벗어나 그저 목소리 싸움이 된 지 오래인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 부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는 두 가지 팩트, 어쩌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모순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개창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기, 기술과 문명의 비상은 인간을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살도록 해주었지만, 동시에 인간 본연의 모습을 상실케 하기도 했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가. 지금 있는 기술들은 과연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이뤄줄 것인가.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짚었듯이,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묻겠다. 지금 인류는, 진보하고 있는가, 퇴보하고 있는가. 이 단순한 질문에 각자가 내리는 답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