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가운데 무엇을 놓아야 할까요

어쩌러고 주절주절 @#$%?Part_2.

by 지음 허투루
@#$%? Part_2


뜬금없이,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생각하곤 합니다. 그럼 짜증과 한탄이 나곤 하지요 서른 중반이 넘어서부터 여태 건지게 없다는 생각에 더 나이 먹는 것이 두렵습니다. 돈이 없어 가지지 못한 것에 관한 건, 돈이라는 걸 자각했을 때부터 돈이 없었기 때문에,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에 포함되더라도 일단 빼두었는데도 두렵움은 물러가지 않더군요.


슬픔을 이야기하는데, 비참하고 참담하고 처절함까지 논해야하는 명제는 또다시 우울의 구렁텅이로 빨려 들어갈 수 있으니까. 배제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게 빈곤, 가난, 것들이라서 더더욱! 그럼 배제된 것들을 제외하고, 영원히 가지지 못할 것 같은 것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가지지 못한다고 확정해 놓았을까?


행복? 유년시절에는 어디 하나 모난데 없이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고, 이따금 철없어서 일탈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일탈이 비행이나 범죄로 빠지지 않았지만, 성인의 세계를 동경한 미성년자의 이른 진입으로 어긴 법은 한두 가지는 벗어나 있었습니다. 무면허 오토바이 운전이나, 무단횡단, 흡연과 음주. 나열된 것들의 무게는 다소 무겁게 느껴지지만, 호기심과 허영에 의한 것이기에 따돌림, 일진놀이 같은 유치하고 끔찍한 짓들과 결코 이어지지 않았음을 자부하고 다행이다 여기고 있습니다.


이딴 게 뭐 자부할 '꺼리'라도 되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굳이 ‘행복’이란 말 말고 다른 온도의 말이 있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여전히 그 시절을 들여다보면, 분명 따뜻하고, 아쉬움이 들만큼 후회되는 일 투성이 또한 나름 잘 헤쳐 성장해 왔다고 스스로 대견해 하지만, 행복으로 명료하기엔 안정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행복이 꼭 안정적이고 기쁨이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것으로 정의할 수 없죠. 적당한 상처와 실수, 미숙했던 과거의 절실한 몸부림도 얼마든지 행복의 목차에 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차에 덩그러니 행복이라고 적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지금도 내 삶은 행복한 삶은 아닙니다. 행복의 기준이나 경계 혹은 영역을 확정할 수 없습니다. 마치 그건 어떤 일이든 한계를 규정하고 가능성을 제한하는 느낌이 듭니다. 문제는 그 어떤 경계나, 한계에 다다를 만큼 매진하고 있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오늘 쉰 숨이 내일로 이어지도록 들숨이 후두를 지나 폐에 닿으며 다시 터널을 빠져나오는 날숨을 인지하고 자각하는 것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며, 자아실현 따위가 버겁기만 한 질풍노도의 시기로 재진입한 것 같습니다. 불혹不惑은 멀지 않은데, 과연 불혹不惑 할 수 있을까? 명확하지 않은 것들은 대부분이 손에 쥘 수 없는 것들로 여겨집니다. 과거나 현재, 미래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지만 불확실한 것! 행복, 사랑, 욕망, 같은 것 말입니다.


늘 내 삶을 채우고 있었던 건 *외롭고 높고 가난하고 쓸쓸한 흰 바람벽인 것 같습니다. 더러는 사랑하는 것조차 벅차고, 겁은 또 얼마나 많은지 ……. 욕망은 호젓하기만 합니다.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합니다. “아무것도 하고 하지 않다고 말하는 너를 통해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는 안도감은 들 수 있지.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 굶어 죽은 사람이 굶어 죽기 전까지 지독하게 굶고 있었잖아. 자의 타의 중요한가?”

……당체 무슨 말인지 물었으나, 친구는 대답을 하지 않고 바쁘다고 가버렸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는 말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중요하지 멍청아!)


나는 친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삶. 열심히 살지 않는 삶은 따로 없다는 위로일까요? 아니면 열심히 사는 자신을 돌이켜 겨냥한 냉담한 조롱일까요?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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