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혼자 시부렁시부렁@#$%? Part_2
@#$%? Part_2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손절(孫絕)은 : 대를 이을 자손이 끊어짐.
손절 (損切): 앞으로 주가(株價)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여,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일.
따위가 있지만, 지금 말하고자 하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손절이다. “손을 잡다.” “서로 협력하다.” “힘을 합쳐 돕다.”에서 파생된 신조어인데, 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잡았던 손을 자르다.” 라는 의미로, “연을 끊다.”란 의미가 가장 적절하겠다.
아직까지 "손절"이란 말의 이미지가 명확하게 떠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감정적인 밀도가 빽빽할 것 같은 느낌이다. 절교나 단교, 단절은 이성적 판단에 근거하거나, 나도 모르는 새에 어쩔 수 없이 끊어진, 혹은 끊긴... 이미지가 강한 반면, 손절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방적인 어떤 계기로 인한, 오롯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뉘앙스가 더 짙게 느껴진다.
흔히 '손절하다.'라고 하지 '손절되다.'라고 하진 않으니까... 여기서 '되다'는 동사지 형용사가 아니다. 그럼 당연히 '손절되다.'는 피동사로 손절의 주체가 '나'가 아닌 다른 것에 의한 것이 된다. 그래서 손절은 '되다'를 사용하지 않고, 하다를 사용한다. 하다의 주체는 오롯이 '나'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절은 내가 하는 것이지. 다른 것에 의해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은 2차적이거나 부차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뭐 이딴 걸 명료화해서 기준이나 법칙 같은 걸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손절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데, 막상 내가 손절당하고 나면 그 기분이 몹시 좋지 못하다. 기분 나쁘다와는 다르다. 어딘가 모르게 슬프고 서럽고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때대로 그런 감정과 마주하고 나면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왜 손절이란 걸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 명확하거나 확실하지 않은 어떤 일을 명료하고, 그렇다고 여겨버린다.
그러니까. 당신이 나를 손절한 이유가 귀찮은 탓이라 여긴다. 그리곤 지난 모든 일들을 귀찮음으로 끼워 맞춘다. 인사에 화답하지 않는 것도 질문에 침묵하는 것도 연락을 쌩까는 것도 모두. 어떤 사건이나 내 태도 때문에 의한 손절에 앞서서 그냥 네가 나를 귀찮아 하는 것으로 귀결하는 것. 그 귀찮음 속에 가득 찬 별별 감정들을 자각하는 것만으로 엄두가 나지 않은 귀찮음의 울림. 바로 손절.
야식을 손절하고, 게임을 손절하고, 독서를 손절하고, 카페인을 손절하는 것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타인의 세계로부터 추방을 의미하는 매우 냉혹하고 혹독한 손절. 나는 함부로 할 수 없지만, 당신이라면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형상은 그다지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이상하게 불안은 심증이 확실한 의심처럼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