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하자!

늘 혼자 주절주절!@#$%part_2

by 지음 허투루
@#$%? Part_2


한 번 하자. 한 번만 하자!


하자! “하자”(瑕疵) : 옥의 얼룩진 흔적이라는 뜻으로, ‘흠’을 이르는 말에 대한 건 아니다.


무엇 무엇 하자. 이 ‘하자’. 말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싫다’이다. 아직 한 번도 ‘좋다’란 말이 떠오르는 ‘하자’를 들어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엄마의 ‘하자’는 잔소리 같고, 아빠의 ‘하자’는 마치 내게 일을 떠넘기는 것 같고, 형의 ‘하자’ 좀 안 하면 맞을 것 같고, 누나의 ‘하자’는 귀찮을 것 같고, 동생의 ‘하자’는 욕 나올 것 같다. 아직 애인 먼저 ‘하자’는 당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특히 ‘같이’란 말이 들어가는 순간 부담은 수십 배 늘어난다. “같이 하자.”라고 건네는 ‘같이’란 말에는 왜 늘 자신이 빠져버리는 걸까. 다른 사람 탓할 게 못 되는 게 우선 나부터가 그러하다. ‘같이’ 밥 먹자는 ‘네가 사라’는 말이고, ‘TV 같이’ 보자는 말은 ‘리모컨을 어서 내게 대령하라’는 말이고, 엄마 아빠에게 ‘같이’ 나가자는 말은 ‘가는 길에 나 좀 내려줘’ 란 말이다.


애초에 ‘하자’는 이미 자신을 포함한 능동사다, ‘같이’ 말이 앞에 붙는 순간 두 명의 자신이 충돌한다. 충돌의 힘은 서로 비슷해서 누구 하나 멀쩡할 수가 없다. 즉 나는 존재하되 기능을 하지 못하니 ’같이 하자’는 나 대신 내 일을 대신해줄 부추김 동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간혹, ‘같이’의 자신과 ‘하자’의 자신이 의기투합하여 일심동체가 되기도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 경우 말곤 떠오르는 것이 없다. 즉, 애인에게 건네는 ‘같이 하자’인데, 애인인 당사자 말곤 다른 누군가는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오롯이 존재 그 자체인 경우라 하겠다.


이제는 무언가 함께 “하자”란 말 속으로부터
더이상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우 슬프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말인지는 잘 뜯어보면, 몹시 개떡 같은 말이다. 또한 앞서 문장의 ‘같이’란 직유도 나를 수사한 것이기에 부정적인 나를 띄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싫다’가 먼저 떠오를 수밖에. 당신이 건넨 ‘하자’는 결국 싫다는 것이고, 내가 당신에게 건넨 ‘하자’는 글쎄, 결심인지 부탁인지, 어쨌든 싫다란 말이 되돌아올 줄 알면서 동의를 얻어낼 때까지 묻고 또 묻고 묻는, 쿨하게 넘기지 못하는, 언젠가 반드시 되돌려줄 기회를 한사코 바라는 소심한 복수. 혹은 약간의 thank you의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흠이라면 흠일 테지만, 중요한 건 무언가 같이 했으면 해서 부탁하고 조르는 말의 횟수가 요즘 부쩍 사라진 기분이다. 함께! 같이! 하고 싶은 이들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 그건 모난 사회생활이나 사회적 : 관계 탓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다 보면 조금씩 없어지는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요즘 부쩍 누군가에게 ‘무언가 하자’라고 건네는 순간이 없다. 커피 하잔 하자. 같이 밥 먹자. 영화 보자. 쇼핑하자! 축구 보러 가자! 등등 애석하게도 자기 혼자 할 수 없는, 하게 되면 어딘가 모르게 서글퍼지고 씁쓸해지는 덩그러니가 내 일상의 태도로 깊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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