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_2
생일이다. 누구? 나?
생일은 누구 챙겨주는 것 따윈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챙겨야만 오롯이 충만한 날이 될 거란 소소한 믿음 때문입니다. 스스로 챙긴다(?) 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음을 주변에 알리고, 술 약속이든 밥 약속이든 기어코 받아내는 것이 섭섭함이나 서운함 따위가 끼어들지 않게 하는 매우 지혜로운 방법이란 것을 터득했고, 결행을 이어왔습니다.
서로 챙겨주기를 거의 뭐, 반 강제적으로 진행했고, 지인도 덩달아 실행하며, 축하와 무관심이 없는 날로 생일을 맞이하지 말자던 굳은 약속이 몇 년 간 암묵적인 타결로 제법 파행되지 않게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화돼 던 시기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속은 유명무실해졌고, 이젠 연락도 닿지 않는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연락을 해도 그다지 반가움이 들지 않고, 피곤하고 귀찮아하는 듯한, 어딘가 모르게 그동안 보아오던 다른 태도에 당황한 적도 적지 않았죠.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다가 그렇게 될 만한 일이나 사건이 없었단 걸 감안한다면, 그건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랬다는 뜻을 터, 곰곰이 지난날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아마도 뇌피셜이지만, 거의 확신에 찬(?) 연락이 끊기고 드문드문 소식만 접한, 혹은 아무리 시간을 맞춰보려 해도 당최 닿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과 1대 1로 만나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있다 하더라도 마땅한 용건이 없으면 그마저도 여러 핑계로 시작해서 핑계로 자리를 파했지요. 지나다 간단히 차나 한 잔 하는 경우나 용건이 불가피해도 나와 우린 3명 이상이 아니면 만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1대 1은 어색하거나 지극히 불편했을 거란 생각이 들자,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이유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태도 늘 한결같았으며, 어디 모나게 튀어나올 만큼 예민하거나 뾰족하지 않았으니까. 즉, 친밀함이 함께 만나온 친구들보다 옅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내가 자신 지인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내 친구의 친구인 셈으로 보아온 관계가 아닌가 의심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나란 존재는, 앞에서 알짱거리는 게 무척 신경은 쓰이긴 하는데, 기분 나쁘게 불편한 건 아니지만, 마냥 편한 것보단 만만하기도 하고, 귀찮기 그지없는 그런 온도 말입니다. 그들의 쿨함은 카카오 선물, 기프티콘 같은 모바일 교환권으로 한껏 휘황찬란하게 포장되어 있습니다. 물론 고맙고 감격스럽습니다. 절대 비하하거나 폄훼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때때로 오프라인 현실에서 만남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생각하니, 차오르는 서글픔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곤 나도 휴대전화를 열어 내가 모바일 교환권을 보내준 이를 찾아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그들에게 축하를 보냈을까. 돌아보면, 절대 가볍거나 대충대충 같은 마음은 아녔으니, 그들도 그럴 거라 여깁니다. 이내 마음이 따숩게 데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