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의 대흉근
운동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현대인들에게 운동은 필수다.
찝찝한 아이러니다.
다만 그것은 반증불가능한 현실이라, 손가락이나 두들기며 먹고사는 나도 최근 헬스장에 등록했다.
등록 기간을 오래 할수록 더 저렴해지는 시스템이 내 의지를 조롱하는 것만 같다.
’6개월‘, 매일같이 나가기라.
운동을 하며 달라진 점이라면, 일단 내 몸을 수시로 확인하게 된다.
살에 파묻혔던 근육의 모양이 조금씩 드러날 때 희열을 느끼며 가슴을 힘껏 내뺀다.
창피함과 만족감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화장실에서.
운동기구들의 원리를 배우는 것도 흥미롭다.
밀거나 당기거나,
중력과 저항을 거슬러.
운동을 시작하며 식단 또한 바뀌었다.
기름 비율이 많은 고기는 되도록 피하고, 닭가슴살을 따로 주문하여 먹는다.
구워도, 삶아도, 소금이나 특제 소스를 곁들여봐도 소용없다. 닭가슴살은 닭가슴살이다.
주로 닭가슴살을 먹을 때마다 살아 퍼덕이는 닭을 떠올리지는 않지만, 그 퍽퍽함에 실증이 날 때면, 나의 입속에서 끊기고 분해되는 살의 주인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스며든다.
살아있던 생명체를 잡아먹으면서까지 고맙기는커녕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니.
나는 언제까지 응석받이로만 살 것인가.
나에게 가슴살을 내준 닭은 침묵을 지키고, 나는 생각이 깊어진다.
새는 가슴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통해 날개를 움직여 비행한다.
그래서, 뼈에 구멍까지 낼만큼 무게를 줄인 조류가 유일하게 발달시킨 것이 가슴근육이다.
그런데 말이다. 왜인지 닭은 더 이상 날지도 않으면서 그 발달된 가슴근육의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다.
두 다리로 서서 허공에 날갯짓만 열심히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움직이지 않고도 먹고살면서 벤치프레스를 한다.
나나 닭이나, 미련을 밀고 당기며 산다.
중력과 저항 속, 각자 주어진 무게를 들어 올리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