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의 삶
눈사람은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잉태되어 손이 얼어가는 고통을 통해 출산된다. 어른들도 종종 눈사람을 만든다. 어린아이라고 모두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른이라고 모두 만들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부동적이고 자기 방어적인 자세로는 제대로된 눈사람을 만들 수 없다. 심적 여유가 있어야지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눈사람을 만들어 먹고사는 사람은 제외하고 말이다.
눈사람의 개성을 이루는 요소는 다양하다. 일단 눈의 질감과 색, 눈덩이의 크기와 개수(2단인가 3단인가, 4단 이상이 되면 눈사람 이라기 보단 눈덩이 탑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얼굴을 장식하는 재료와 표정 등! 이 많은 요소들이 합쳐져 개성 있고 독자적인 눈사람으로서 거듭난다.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온이 높으면 당연히 안되지만 너무 낮아서도 안된다. 영하 30도를 웃도는 날 내리는 눈은 입자가 좁쌀 같고 개별적으로 나뒹굴어서 잘 뭉쳐지지가 않는다.
군복무를 했던 강원도 양구에서 이런 눈을 경험한 적이 있다. 콧물이 들숨에 얼고 날숨에 녹을 만큼 추운 날, 눈을 한쪽으로 쓸어놓으면 바람이 휭 불어 가루같이 흩어졌다가 반대편 언덕에 차곡히 쌓인다. 그 눈은 바람이 또 휭 불면 붉게 언 얼굴로 날아와 때리고는 사과도 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간다. 마치 차갑고 조그마한 모래알갱이들에 맞는 것 같이 아프다.
그런 온도 속 그런 눈은 잘 뭉쳐지지가 않아 눈사람을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럴 땐 물에 적시거나 손의 온도로 살짝 녹인 후 눈덩이와 얼음덩어리 사이의 애매한 재질로 눈사람을 만들 수 있다. 투박하고 울퉁불퉁한, 나름 개성 있는 눈사람이 만들어지지만, 크게 만들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노력 대비 성과 효율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눈사람에는 눈코입이나 팔을 부여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나뭇가지를 꼽으려고 하면 강하게 저항하다가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몸통 자체가 으스러져 버리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경우, 몸통이 되는 큰 구 하나와 머리가 되는 작은 구 하나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머리를 몸통에 올리는 것은 비교적 기술적인 부분에 해당한다. 그 이후에 얼굴과 팔과 같은 장식을 하는 것이야말로 개인의 창의성을 한껏 뽐낼 수 있는 부분이다.
눈사람을 만드는 것이 계획적이었던 즉흥적이었든 간에 무엇을 사용하여 눈코입을 만들까 하는 구상은 거의 즉흥적이게 이루어진다. 시장에 가서 눈사람의 코로 쓸 당근과 몸통에 붙일 단추를 사 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땅바닥에, 혹은 코트 주머니나 가방 속에 있는 우연적 재료들을 활용하며 눈사람을 장식할 때 숨겨져 있던 우리들의 창의력은 한껏 발휘된다. 하지만 역시 눈사람을 만들어 먹고사는 사람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눈사람은 그 동네의 마스코트처럼 작용한다. 말하자면 일시적 랜드마크와 같다. 원래면 허공에서 흩어져버릴 시선이 눈사람이라는 존재로 인해 초점 맞춰지고 집중돼 눈사람은 그 장소의 상징물로써 자리 잡는다.
해가 한번 쨍하고 떴다고 해서 눈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집 마당에, 아파트 놀이터에, 골목 전봇대 옆에 만들어진 눈사람은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 개별적인 이야기와 추억이 깃들어져 있으며, 짧게는 하루이틀, 길게는 한두 달을 정확히 같은 자리에 서서 그 이야기와 추억을 지킨다.
눈사람은 씨앗이 땅속에서 꿈틀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시체에서는 냄새가 나지도, 구더기가 들끓지도 않는다. 그는 눈치 채지도 못할 정도로 조금씩 녹으면서 땅속으로 스며들고 대기 중으로 증발한다.
겨울을 대변하는 그의 죽음은 봄을 맞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모든 게 죽고 잠들었을 때 태어나, 그들이 일어나기 전에 조용히 죽어버리는 삶. 이름이나 재산이나 유서나 가죽 따위 조차 남기지 않고, 땅과 바다와 식물과 동물에 흡수되어 버리는 삶. 그것이 차디찬 바람을 견디며 겨울을 지키는 눈사람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