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돌이의 깨달음
그날 사람들은 날씨 예보를 보고 집에서 나오길 꺼려 했고, 길고양이들도 두꺼워지는 구름을 보고는 자그마한 처마 아래로 몸을 숨겼다.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어느 외진 골목, 허름한 전봇대 옆에 통돌이 하나가 버려져있다. 통돌이에게 이 모든 상황은 낯설 뿐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구름은 마치 그를 집어삼킬 듯했고, 피난하는 존재들의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그의 불안감은 증폭됐다. 하지만 골목에 홀로 남겨진 통돌이에게는 비를 피할 방도가 없었다.
하나 둘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니 통돌이는 걱정이 앞섰다. 비에 맞으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고, 옷은 다 젖어 빨래를 해야 할 텐데 습해서 잘 마르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이렇게 밖에 있는데 어떻게 빨래를 할 생각인지, 참. 착잡할 뿐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빗방울은 굵어져만 갔다.
그는 그 빗속에 서서 자신의 몸이 서서히 젖어가는 것을 그저 느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는 하나하나의 빗방울들이 새로운 걱정거리를 가져다주는 것만 같았다.
“똑”, ‘집주인이 창문은 잘 닫았으려나?’
“똑”, ‘모터에 물이 들어가면 어쩌지?’
“똑”, ‘녹이 슬어버리면 큰일인데..’
순식간에 억울함이 들이닥쳐 그의 눈물샘을 꼬집었다. 그는 한평생 타인을 위해 살았다. 쉬는 법도 없었고, 손가락의 명령을 거부한 적도, 일을 미룬 적도 없었다. 그렇게 자신을 바쳐가며 살아온 삶인데 결국 이렇게 길 위에 버려진 신세가 되었다니. 허탈감이 몰려왔다. 무엇 하나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다. 만들어진 것도, 열심히 일을 한 것도, 현재 비를 맞고 있는 것도.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렸다. 쏴 하는 소리는 주위 모든 소음을 잡아먹었다. 대기에 공기보다 물이 더 많은 듯 했다.
그는 완전히 젖게 되었다. 그의 몸은 마치 거대한 빗방울 속에 들어온 것만 같아, 또 하나의 빗방울이 다른 걱정거리를 들고 그 위로 떨어진다 한들 그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101% 젖는다는 것은 그저 불가능하지 않는가. 그의 몸은 (원래부터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마비가 되어버린 듯했다. 마치 바닷속에 들어온 듯 중력은 약해졌고, 먹먹하고 고요한 심해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그의 내면에서 어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의 존재는 분명 100% 젖어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고 젖었다 말하지 않는다. 물 밖에 있는 것만이 젖을 수 있는 것. 마른 것이 없는 물속에선 젖은 것 또한 있을 수 없다.’
비는 계속 세차게 내렸다. 온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물방울 속에 들어온 듯했다. 지금 그 외진 골목에는 마른 것이 없었고 고로 젖은 것 또한 없었다. 그 속에 통돌이는 명상 중의 승려와도 같은 부동의 자세로, 골목과, 세상과 하나가 되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저 머리 뒤편에서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올 뿐이었다.
‘나의 속에서 일어났던 현상이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세상은 마치 거대한 나, 거대한 세탁기 속과 같지 않은가. 나는 고장이 났기에 버려질 수 있었고, 버려졌기에 비가 오는 날 여기 이 길 위에 서있을 수 있었으며, 비에 맞았기에, 세상에나, 그 수많은 걱정을 할 수 있었고, 걱정거리에 몸을 담그니 이 지혜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있어 하나의 물방울은 바다이며, 바다는 우주이고, 하나의 우주는 나의 뺨을 타고 떨어지는 이 물방울이 되었다. 큰 것과 작은 것, 약한 것과 강한 것, 도덕적인 것과 부도덕한 것, 사랑스러운 것과 경멸스러운 것, 이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홀로 사라질 수 없으며, 완벽하게 있을 수도, 완벽하게 없을 수도 없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통돌이는 그제야 비가 그쳤음을 깨달았다. 햇빛줄기가 구름 사이사이를 뚫고 들어와 골목의 부분 부분을 비췄다. 벌써 통돌이의 윗뚜껑 부분은 말라가고 있었다.
챱챱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길고양이도 긴 비가 지루했었는지 좁은 처마 밑에서 나와 기지개를 켜며 긴 하품을 했다. 그리곤 흥미를 돋울만한 게 없는지 두리번거리다가 통돌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왜인지 모르게 그에게서 다른 느낌을 받은 고양이는 괜스레 그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결국 아무런 단서도 건지지 못한 탐정처럼 꼬리를 살랑 흔들곤 발걸음을 옮겼다.
그 외진 골목, 전봇대 옆에 아직 버려져있는 통돌이는 더 이상 하나의 개채로서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이제 그 골목의 일부이자 이 세상과 하나였다. 버리는 것도 버려지는 것도 없는 이 세상에서 그는 그저 잠시 버려진 역할을 수행 중이었을 뿐이다. 그는 그가 현재 그곳에 있음을 인식했다. 그러곤 몸에 묻은 물방울을 말리는 따스한 햇빛을 느끼며 다시금 자신의 호흡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