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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씨 Dec 15. 2020

반짝이던 것들을 보내야 할 때

다른 누군가에게 반짝일 수 있기를

사람마다 애착을 갖는 물건들이 있다. 나도 있다. 활자가 찍힌 것들이 그렇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한권 두권 사다 보면 답도 없다. 이미 꽉찬 책장의 빈틈들을 채우다가 집안 곳곳에 책을 쌓아둘만한 곳이라면 터를 잡는게 바로 책이며 피아노 빈틈에도 책은 켜켜이 쌓여만 간다.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라, 눈치챌 겨를도 없다. 그렇다. 나는 책에는 아주 관대하다.


여기서 주인공은 고양이가 아니다. 드문드문 또아리를 튼 책들..


살때는 그렇게 비싼데, 팔때는 헐값에 팔리거나,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는 게 또 책이다. 그걸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중고마켓에 내가 가진 책을 팔기 위해 올려보거나 알라딘같은 중고책플랫폼에 들어가서 가지고 있는 책의 바코드를 찍어보는 것이다. 매입가격이나 관심도를 확인하고 나면 급격하게 우울해지고 정신적인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건 마음이 조금 시큼하게 아픈 순간이기도 하다.

이럴리 없어...
산 가격의 1/10도 안되는 것 같다.


그저 내가 그 책을 읽었고 그 책을 소장했기 때문에 종이와 활자들이 반짝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평소에는 책들이 내 공간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그 지식과 정보들이 꼭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자기착각의 힘이다. 먹지 않아도 아이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소리랑 비슷하다. 아이들 먹는 것만 보면 당연히 배는 고프더라. 단지 밥하느라 지쳐서 식욕이 없을 뿐.


또 책들이 곧 나의 가치, 나의 자아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며 내가 나에게 허세를 부렸다는 것도 인정한다(많이 그런편은 아니라고 믿고싶다).


시간의 힘을 빌어, 책과 이별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책마다 다르겠지만, 아이들 책은 나눔이 가장 내 마음을 ‘단디’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그냥 몽땅 재활용장소에 놓고 오는건,  아...상상할 수 없다.


여하튼, 일차적으로 아이들 책은 나눔한다. 아이들 책 중고판매는 중고옷파는 것만큼 힘들지만, 나눔은 매우 쉽다. 아이들 책은 비싸고 아이들은 금방금방 자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면 해야 할 가장 중요할 절차가 남아있다. 바로 나눔을 원하는 사람들을 할 수 있는 한 치밀하게 조사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절차다. 정말 책을 잘 사용해줄 것 같은 분을 찾아내야 한다. 나름 자체면접이다. 합격의 기준은 책을 잘 사용해 줄 것 같은 흔적과 증거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합격자에게 당부의 인사까지 전하면 끝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보내드립니다.

아이들 책은 정리하고 비워냈다(물론 끙끙대다 이사 전날 나눔했다는 건 안비밀). 마지막 이별하는 순간만 잘 견디면 된다. 책을 보내기 전에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왕자가 명작이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며 왜 아이들은 그 명작을 쳐다도 보지 않았는지 원망이 잠시 스쳐지나간다. 동화책 읽기에 다소 나이가 많은 감은 있지만, 내가 저걸 다시 읽고 더 멋진 교훈과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어줍잖은 생각들도 가볍게 무시해주면 된다.


마지막으로 다른 곳에 가서 다시 한번 반짝이길 가볍게 희망해본다. 다음날이 되면 나는 분명 깨끗해진 책장과 집을 보면서 자부심에 들떠있을 것이므로.

너 미니멀리즘 좀 하는데? 후훗...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내 책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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