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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씨 Dec 14. 2020

아...오늘도 버리지 못했다.

그게 뭐라고...

거의 한달 넘게 베란다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던 책들. 밖으로 꺼내 놓은후로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책장에, 박스에 담겨 있을 때는 오랫동안 잊고 살 수 있었다. 그 방에 안들어가면 안보이니까. 하지만, 미니멀하고 깔끔하게 살아보고자 베란다로 책을 빼면서 다짐했었다. 다 깔아놓고 제.대.로. 정리하기로.


그런데 어제도 오늘도 버리지 못했다
(아마, 내일도, 모레도?!)


그사이 정말 온 힘을 다해서 내가 한 일은, 오래된 어학책과 오염된 책들을 버리고, 십여권이 넘은 육아, 교육책은 아이를 키우는 친구에게 택배로 보내고, 읽기 괜찮은 신간서적들과 대중적인 책들은 선별하여 오빠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마저도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서 마음의 평화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

아...불태웠다.
그냥 내 마음만.


하지만 일단 책장을 벗어나 세상 빛을 쬐는 순간부터 책들은 나를 수시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베란다를 쳐다보며 수십번씩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리해야 하는데..


혹시 90년대 박혜경의 ‘고백’이라는 노래를 아는지 모르겠다.


말 해야 하는데 네 앞에 서면
아무말 못하는 내가 미워져
용기를 내야해 후회 하지 않게
조금씩 너에게 다가가 날 고백해야해
내 오래된 친구인 널 좋아하게 됐나봐
아무렇지 않은듯 널 대해도
내 마음은 늘 떨렸어
미소짓는 너를 보며
우리 사이가 어색할까 두려워
아무런 말 하지 못한채
돌아서면 눈물만 흘렸어
말 해야 하는데
네 앞에 서면 아무말 못하는 내가 미워져
용기를 내야해 후회 하지 않게
조금씩 너에게 다가가 날 고백해야해
처음 너를 만났던 날
기억 할순 없지만날
그저 그런친구로 생각했고
지금과는 달랐어
미소짓는 너를 보며
우리 사이가 어색할까 두려워
하루종일 망설이다

...(중략)...


정리하려고 책 앞에 선 내 마음을 정말 잘 표현해주는 가사다. 막상 책 앞에 서면 ‘아무말 못하는 내가 미워져..’ 그렇지만,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까지도. 아. 그런데 나란 사람은 또 책을 몇번 뒤적이다가 돌아서고 만다. 그런 사람이다. 내가.


그렇게 고민을 하며 시간을 죽이다가, 책들이 한여름 햇살을 맞아 바래질까 싶어 다시 거실로 책들을 들였다. 책방에서 베란다로, 다시 거실로. 이런 나를 보며 아이들이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한다.


엄마, 책 정리하는 거 맞아요?


그러니까 말이다. 나 지금 뭐하는 거니?

죄책감에 밤에는 거실 불을 일찍 꺼두기도 한다.
너희들을 어쩌면 좋니? 나를 어쩌면 좋니?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곧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말 미니멀하고 기능적인 공간을 만들어가며 살고 싶다. 진심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소위 추억의 물건,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에 대한 미련을 거둘 수 있어야 한다.

넌 할 수 있어!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조용히 책들을 다시 책방으로 옮겼다....


p.s 그 사이, 나는 책장을 하나 중고마켓에 팔아버렸다. 아이들 책까지도 이젠 집떠나와 바깥구경을 하고 있다. 남은 책장에 들어갈 책들만 고르겠다는 나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랄까?

이젠 아이들 책도 가출시켰다. 나 어쩌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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