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2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금요일 밤, 더듬이가 나왔다.

유난히 나이드는 금요일

by 동치미 Feb 12. 2025

등에서 더듬이가 하나 길게 뻗어나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원의 흐름에 닫는다. 눈으로는 지금 이곳을 보고 있으면서 더듬이로는 영원을 느끼니, 눈 앞의 현실이 작게 느껴진다. 드론이 솓구치면 카메라 화각이 넓어지듯, 등에서 나온 더듬이가 길어지고 영원에 대한 상상이 커질수록 나의 등허리와 나의 인생은 더 작고 초라해보인다. 



'우울'은 어쩌면, 영원을 느낀 사람의 더 분명한 현실감각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의미와 지금 내가 하는 것, 내가 적는 글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허무는 급격하게 마음에 스미고 무거운 얼룩을 남긴다.


가죽 대신 이름을 남긴 사람에게 그 명성은 무소용이다. 모든 나라의 교과서에 이름이 실리고 자신의 얼굴로 화폐가 발행되고 무슨 무슨 공식이라든지 어디 어디 거리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워도, 그 명성과 그 무덤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 누구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며 얻는 것도 분명 없지 않겠으나, 지워지는 푸름과 다가오는 죽음의 거북한 일방통행 앞에서는 비교 거리가 되지 않는다. 이제 살면서 전속력으로 달릴 일은 거의 없을 것이고, 아름다운 태로 낯선 이에게 호감을 줄 일은 없을 것이며,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고 밤새 찌그러진 주름을 애써 무시하는 일은 갈수록 슬플 것이다. 


째깍 째깍 멈추지 않는 시계의 초침 소리는 아마도 영원하겠지만, 그 소리를 듣는 나의 시간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점차 모든 것은 그저 발버둥에 불과할 것이고, 함께 추억을 공유하던 사람들은 점차 사라져 존재는 더 외로울 것이다. 



출근 시간이 되면 늘어진 더듬이를 대충 접어 내복 안에 쑤셔놓고, 앞만 볼 수 있는 두 눈을 떠 지하철을 타고 모니터를 보는 현실을 충실히 산다. 그러다 어스름 퇴근길 헤드폰에 음악이 재생되면 더듬이는 내복을 비집고 나와 초점이 흐려진 눈처럼 여기가 아니라 저 멀리 어딘가를 향한다. 


오늘, 금요일 밤에는 더듬이가 유독 지랄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