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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노 Jul 04. 2020

당신과 나. 아마 우리 모두는 이미 실존주의자일걸?

- 실존주의, 사르트르

사랑에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하고,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연달아하고 실패의 수렁에 빠져, 도전하는 것이 두려웠을 때, 이렇게 생각을 했다. 나는 대체 뭐하는 놈이지.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지. 곰곰이 더 생각을 해봤다. 못생겨서였고, 스펙이 부족해서였고, 쉽게 긴장하고, 자신감이 부족한 성격 탓이었다. 나는 시정마 같은 존재였다. 다른 수컷들과 구직자들을 돋보이게 하는 존재였다. 암말에 걷어차이는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곧 열매를 맺겠구나 하는 순간. 사람들의 손에 끌려 퇴장당한다. 비참함에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봤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화를 내기도 해 봤지만, 보잘것없는 나라는 존재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실패에 익숙해지고 좌절이 일상이 되었을 때쯤 깨달았다. 나는 루저구나. 항상 한심하게 생각했었는데, 그 병신이 나였구나. 이게 내 정체이고 나라는 인간의 본질이구나.


의자의 본질은 사람이 앉는 것이다. 다리 하나가 부러지면, 사람이 앉을 수 없다. 의자의 본질을 상실한 것이다. 의자로써의 가치가 없다. 앉지 못하는 의자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의자같이 생겨 보이지만, 그것은 더 이상 의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폐기 처분한다. 신발의 본질은 신는 것이다. 신발같이 생기지 않았지만, 사람이 신을 수 있다면, 그것은 신발이다. 신발로 만들어졌지만, 사람이 신을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신발이 아니다. 이렇듯 의자와 신발의 본질은 실존에 앞선다. 본질이 존재의 이유를 결정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본질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만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본질은 결정되지 않은 데다, 고정된 것도 아니다. 만약 내가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된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를 폐기처분하지 않는다. 다리가 멀쩡할 때보다야 불편하겠지만, 여전히 직장생활도 하고 사회생활도 하는 사회의 구성원이며, 여전히 어느 가족의 구성원이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그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


나는 사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눈떠보니, 그냥 세상에 태어나진 상태였다. 우리 모두는 그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자다. 이를 피투성(被投性)이라 한다. 인간의 태어난 목적이나 이유, 기능, 본질 같은 것은 없다. 일단, 태어나긴 했는데, 어떻게 하라는 가이드를 주지 않는다. 자유를 선고받았다. 자유롭기에, 매 순간 선택에 직면한다. 그중 어느 선택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알 수가 없다. 내 꼴리는 대로 행동하지만,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모른다. 정답을 모르는 문제지를 받았다. 그래서 불안하다.


정답은 없다. 혹은 모든 선택이 정답이다. 인간은 그 끊임없는 선택을 통해 미래로 나아간다. 불안하기는 하지만, 어떤 것을 계속 선택하면서, 자신을 미래로 던져야 한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인간을 기투(投)하는 존재라 부른다. 기투는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에로 자기를 내던지는 실존의 존재 방식이다. 우리는 의도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끊임없이 기투하고 있다. 어젯밤에 야식을 안 시킬 수도 있었지만, 치킨을 시키는 선택을 했다. 덕분에 나의 몸은 더욱더 우람해졌다. 선택의 결과이다. 내 인생이 실패로 얼룩졌었던 것은 과거에 내가 했던 선택의 결과이다. 나의 노력이 부족했다. 분명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를 않았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짊어진다. 선택이 어려운 것은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매일 밤마다 치킨과 보쌈을 시켜먹으며, 하루에 똥을 2번씩 싸는 똥 만드는 기계가 당신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연예인 뉴스만 찾아다니며 악플 쓰는 악플러가 당신의 본질이 아닐 것이다. 나의 존재는 내가 선택한 길의 결과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은 때이지만, 지금이라도 바뀌어야 한다. 바뀌지 않는다면,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될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한다. 더 나은 가치를 찾아야 한다. 정확한 개념까지는 몰랐다 하더라도 당신은 아마 실존주의자였을 것이다. 혹시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 글을 읽은 이후에는 실존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말이 머릿속에 새겨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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