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카르트
내가 지금 생각을 하고 있긴 하다. 이건 확실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확신해서 말할 수 있을까. 혹시, 나는 실험실 비이커에 들어있는 말랑말랑한 뇌덩어리이고, 내 눈앞에 있는 풍경은 모두 뇌가 꾸며낸, 환상은 아닐까. 어쩌면, 지금 이곳은 매트릭스 안 일지도 모른다. 나의 본체는 저기 어디 쓰레기장 같은 곳의 관 짝 속에 누워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믿었던 현실이 가짜인데,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어쩌면, 나비일 수도 있다. 한 마리의 나비. 이 모든 것은 한낱 꿈이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이고, 현실이라 생각했던 것이 꿈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믿지 못하겠다. 내가 진짜 나인가? 나는 어는 연못의 소금쟁이이거나, 잉어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떠한 자극을 통해,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꾸는 것이다. 사실은 내가 나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나가 아닌데 , 내가 존재한다고 떠벌리고 다녀도 되는 것일까.
기억을 거슬러, 최초의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한다. 아, 이런.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두 눈을 감고, 가장 오래된 기억을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려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우유급식 받은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당시, 흰우유를 좋아하지 않았다. 8살의 기억과는 안녕을 고하고 기억을 더 거슬러 올라가 떠올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나의 어린 시절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엄마 뱃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초등학생의 몸에서 나라는 존재가 시작된건가.
한 가지 중요한 가정을 하지 않았다. 내가 생명체가 아닌, 사이보그일 경우의 수. 나는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프로그래밍된 AI가 연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게끔 코딩되어 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자유의지가 아니다. 내가 생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누군가에 의한 의도된 코드일 뿐이다. 팔뚝살을 만져본다. 말랑말랑하니, 잘 만들어졌다. 이 살은 진짜 내 살이 맞는 걸까. 팔뚝살을 꼬집어본다. 아프다. 이 감각은 진짜일까. 찬찬히 생각을 해봤다. 아프다는 것은 자극이며, 감각이다. 근데, 이 팔뚝살은 진짜 살이 아니라, 젤라틴으로 만든 가짜 피부이다. 따라서, 이 자극과 감각은 가짜이다. 이 아픔은 존재하지 않는 입력된 통증이다. 나는 더이상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이 감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약 400년 전에,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르네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근대철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철학 명제를 남겼다. 그는 가장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절대적 진리를 찾으려 노력했다. 모든 앎의 출발점이 될 확실한 지식을 발굴해 내고, 여기에서부터 세계에 대한 지식을 다시 구성하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것을 끝없이 의심했다. 모든 확실하지 않은 것들을 소거했다. 인간의 감각 같은 것들은 당연히 믿을 수 없다. 나는 배고프지 않지만, 거짓된 배고픔에 치킨을 시키기도 하고, 실제로는 가렵지 않은 등이 가렵다고 착각하여, 등을 긁는다. 고열의 독감을 앓고 잠을 자면,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을 할 수 없다. 감각은 때때로 인간을 기만한다.
물리법칙, 수학법칙 또한,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 데카르트는 어떤 전지전능한 악마가 자신에게 개입하여 모든 감각기관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을 경우를 상정하고 사고실험을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데카르트의 악마>이다. 원래 2+3은 6인데, 그 악마의 힘으로 5라고 믿도록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닐까? 내 손가락을 쳐다본다. 손가락 두 개에 세 개를 더하면 여섯 개가 된다. 하지만 악마는 다섯 개라고 내 뇌에 끊임없이 속삭인다. 다시 손가락을 보니, 두 개에 세 개를 더한 손가락의 합이 다섯 개다. 우린 이 악마에게 완벽하게 지배당하고 속고 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그 악마의 속삭임에서도 한줄기 희망을 보았다. 비록 악마가 나를 속일지라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지식이 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생각하고 의심한다는 사실이다. 실험실 비이커 뇌 속에서 전기자극으로 환상을 보고 있지만, 이게 진짜 환상인지, 아닌지를 의심하는 내가 있다. 이 세계가 진짜 현실인지, 매트릭스인지 의심하는 내가 있다. 내 눈앞 노트북이 환상이고, 내 몸은 휴머노이드 고철일지라도, 모든 것이 조작되고 악마가 거짓을 참이라고 속이고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하고 사유하는 나 자신의 존재는 확실히 증명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지식이다. 내 존재가 의심스러웠지만, 나의 존재함은 확실하다. 지금 이곳이 진짜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라 할지라도, 이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한다.
답을 찾았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고한 진리를 깨달았다. 나는 존재한다. 이제 내가 존재함을 첫 번째 진리로 삼고 내가 무엇이고,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이 세계는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끝나는 것인지 등을 탐구해 나갈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벌써 절반에 도착했다. 그 절반 위에서 <정신승리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를 시작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