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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노 Oct 11. 2020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도 않다

- 역법

얼마 전이 내 생일이었다. 나이를 한 살 또 먹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내 나이를 말하는 게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다. 나는 조금 억울하다. 무엇하나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먹었다는 점에서 억울하고, 나이를 먹었음에도 그 나이에 알맞게 남들처럼 성장하지 못해서 억울하다. 나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나는 20살 어른아이의 그때와 똑같다. 여전히 치킨과 피자, 햄버거를 한식보다 좋아한다. 여전히 한심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집에서 웹서핑을 하고, 티브이 대신 유튜브를 보긴 한다. 그리고 별 같잖지 않은 글들을 여전히 쓰고 있다.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며 실패에서 배운 것이 없다.


나이를 먹는 게 서글프다. 나의 늙어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때와 똑같이 먹었는데, 살이 더 찐다. 체력 회복이 안된다. 피부의 탄력이 줄어들었다. 늙어감은 연속적인데, 나이를 먹는 것은 이산적이다. 갑작스럽게 한 살을 더 먹었다. 이 나이라는 것을 따지고 보면, 보잘것 없다. 고작,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고 제 자리에 돌아왔을 뿐이다. 다시 말해, 나이는 내가 태어난 이후의 지구 공전 횟수이다. 이는 너무나 유니버셜 하지 못한 국지적인 생각이다. 의미가 아예 하나도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대단한 기념일은 아닌 것이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오늘 하루는 1/365살에 불과하다. 너무나 하찮고 대단치 않은 계산법이다.


아주 먼 옛날에, 사람들은 역법이란걸 개발해냈다. 역법은 고대사회의 천문학과 수학 기술의 정수로서,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준 분야 중에 하나이다. 역법을 통해, 자연의 변화를 예측하였다. 그리고 달력을 만들었다. 달력을 통해, 언제 작물을 심고 언제 수확할지를 구별할 수 있었다. 역법 이전에는 나이의 개념이 없었다. 1년이 무엇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달력을 통해, 인류는 농업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수 있었다.


우주의 나이는 가늠조차 할 수 없고 지구의 나이는 46억 년이다. 최초의 인류는 350만 년 전에 태어났다. 예수가 태어나고 지구는 태양을 2000번 넘게 돌았다. 그뿐이다. 우리의 1년, 우리의 하루는 이 거대한 우주의 신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 점의 먼지조차도 아니다. 나이란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카운트 계산에 불과하다. 어차피 고작 100년 정도 사는 인간은, 내면의 저장창고에 곡식을 쌓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곡식이 증식되지는 않는다. 스스로 노력하고 가꾸고 증진시켜야 한다. 가끔 썩기도 하고 불이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결국에 남는 것은 차곡차곡 저장했던 곡식들이다. 결국 썩어 문드러질 육신이다. 그전에,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100년 후 사라질, 몸뚱아리를 위해서는 꾸준한 운동과 선크림을 바르기만 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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