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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노 Jul 11. 2020

따지고 보면, 내 탓은 거의 없다.

- 단군신화, 부처의 독화살

내일이 시험인데, 시험공부가 안된다. 집중이 안된다. 게임이나 한판 할까 하는 충동이 들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래, 시험이 당장 14시간 후인데, 게임하는 건 너무했다. 그런데 책상이 너무 더럽다. 먼지는 왜 이렇게 낀 건지. 이번엔, 책상 청소를 하고픈 충동이 생긴다. 집중이 안됐던 것은 책상이 더러워서였다. 이거만 닦으면, 공부가 잘 될 것만 같다. 그래서 물티슈를 한 장 뽑아, 책상을 훔친다. 자, 이제 공부를 시작해 보려고 했는데, 의자 밑의 머리카락이 신경 쓰인다. 이렇게, 시험을 망쳤었다. 나의 노력은 언제나 비효율적이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게 있었다. 어떤 분야건, 1만 시간의 노력을 들이면, 그 분야의 대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 재능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선천적 재능과는 별개로, 노력 한 가지만 놓고 그 노력을 분해하고 해석해 보면, 노력 또한, 집중력과 정신력이라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노력도 재능의 한 분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노력의 재능까지도 없다. 타고나질 못했다.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보지만, 능률이 나오지 않는다. 매 순간을 집중하지 못한다. 그래서 패배감을 느낀다. 머리도 좋지 않은데, 노력마저도 잘 되지 않는다.


이건 다 유전자 탓이다. 내 탓이 아니다. 못 생긴 얼굴도, 작은 키도, 똑똑하지 못한 머리도, 모두 유전자 탓이다. 운동능력, 예술 감각도 없고 무언가 잘하는 특기 하나 없다. 내 탓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태생이 루저로 태어났을 뿐이다. 이건 다 유전자 탓이며, 나를 이렇게 낳은 부모의 탓이다. 그런데, 부모님들도 할 말이 있다. 나도 내 부모한테 물려받은 거라고. 이건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고. 내 탓이 아니었듯이, 부모님의 탓도 아니었다.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조선, 고려, 삼국시대를 거쳐, 끝까지 올라가 보니, 단군왕검이 나온다. 단군 탓이었다. 단군, 이 사람이 문제였다.


환웅이 호랑이와 곰에게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만 먹으면 사람의 모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호랑이는 포기를 선언하고 동굴을 탈출했고, 곰은 약속을 끝까지 지켜, 웅녀가 되었다. 환웅은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았고 이 단군왕검이 우리 민족의 시초라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곰이 사람이 된 것은 아닐 것이다. 환웅이 진짜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의 자식도 아닐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곰과 호랑이를 숭배하던 토테미즘의 신석기 사회에, 천손 신앙을 가진 청동기 집단이 유입되어 그들이 호랑이 부족과 곰 부족을 흡수한 후, 고조선이라는 나라로 발전했다라고 해석한다. 단군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단군에게도 부모가 있었다. 곰 부족의 엄마와 천손 신앙의 아빠.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단군이라는 원인에 나라는 결과가 있었고 단군이라는 결과에도 필연듯이 원인이 있었다. 단군의 부모에게도 똑같이 부모가 있을 것이다. 인류의 최초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최초의 인간을 찾아도 끝이 아니다. 최초의 인간은 어떻게 태어났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모든 것의 끝, 바꾸어 말하면 모든 것의 시작으로 올라가 본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 신이 그 빛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면, 그 신은 누가 만든 거지? 신성이 모독되는 질문이다. 과학자들은 이 우주가 빅뱅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해는 잘 안 가지만, 몇몇 증거가 있다고 한다. 그래, 잘 알겠다. 이 우주는 한 점이었다가 대폭발로 생겨난, 결과물이다. 그러면, 빅뱅 이전엔 뭐가 있었던 거지?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이라는 개념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시간 그 자체도 우주 탄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은 무라고 주장한다. nothing.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그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신이 만들었다면, 신에 대한 이전이 있었을 것이다. 빅뱅의 한 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들판에 사과 한 개가 놓여 있다면, 나무에서 떨어졌거나, 누가 거기다 놓은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다만, 그 원인은 현재 우리의 지식만으론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부처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 세계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영원하면서도 무상한가? 영원하지도 무상하지도 않은가?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유한하면서 무한한가? 유한하지도 무한하지도 않은가? 자아와 육체는 동일한가? 별개인가? 부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사후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지도 존재하지 않지도 않는가? 이를 <십사무기>라고 한다. 이 답변하기 어렵고 자신도 잘 모르는 곤란한 질문에 부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독화살을 맞은 자는 독화살을 빨리 빼내고 독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지, 독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독화살의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억울하겠지만, 팔뚝에 화살이 꽂혀있다. 우리는 이미 독화살에 맞은 상태이다. 누가 쐈는지, 무슨 독인지, 왜 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걸 알 방법도 알아낼 시간도 없다. 일단은 독을 치료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내가 못난 것은 내 탓이 아니다. 하지만, 이 못난 사람이 나다. 내가 못난 이유를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단점과 약점을 개선하고, 장점을 살려, 더 나은 인간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탓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 탓, 내 잘못이 아닌 만큼, 나는 떳떳하다. 주눅 들고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다. 결과가 좋을 수도 안 좋을 수도 있다. 좋았다면, 내가 노력하고 잘한 결과인 것이고 좋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던 것이었다. 스스로 상처 입히고 상처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잘 되지 않았다면, 모든 걸 운명, 숙명으로 받아들이자.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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