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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노 Jan 17. 2021

독거노총각이 되어 얻는 깨달음

- 불교철학, 에피쿠로스

여자란 신기루다. 돈도 명예도 쾌락도 모두 허상이다. 불교철학에 따르면, 이것들은 모두 실체가 없다.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상호관계하여 성립되므로 독립적이고 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서로의 인연에 따라 생멸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변하고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덧없고 실체가 없어 공(空)하다.


마음이 동하지 않은 여자는 고깃덩이에 불과하다. 통장의 돈은 사이버머니, 전산의 데이터에 불과하다. 명예나 평판 같은 것은 봄날의 아지랑이와 같다. 바람결에 쉽게 흩어진다. 지금의 욕망은 심신의 감각과 호르몬의 작용, 바라보는 시각 등의 인연으로 생긴 것에 불과하다. 욕망의 집착 때문에, 삶에 괴로움이 생겼다. 욕망에 집착하는 것이야 말로, 허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물질에 의미를 부여하니, 싸움과 슬픔이 생기고, 자만하며 남을 헐뜯게 된다. 이 집착을 끊어야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라는 존재의 실체는 없다.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이뤄진다. 내가 사람인 것은 부모가 나를 낳았기 때문이다. 내가 직장인인 것은 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노총각인 것은 결혼을 못 했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나는 없다.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나를 내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괴로움이 생겼다.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 괴로움이 생겼다. 지금 가지고 있는 내 스마트폰은 언젠가는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지금 건강한 내 몸은 언젠가 건강을 잃어버리게 된다. 지금의 내 부모님은 언젠가 돌아가시게 된다.


집착을 끊어야 한다. 나라는 존재를 버려야 한다. 나를 나라고 믿는 환상을 깨뜨려야 한다. 지금의 내가 나일지라도 언젠가는 내가 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허상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번뇌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 번뇌의 얽매임에서 탈출하여, 해탈의 경지로 올라가야 한다.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비로소 해탈하면 고요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여자, 돈, 명예 같은 것은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 나조차도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추위와 외로움이라는 고행 속에서 이 깨달음을 얻었다.


이름만 쾌락주의인 그리스의 소피스트 에피쿠로스도 석가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쾌락주의라는 단어 때문에 이상하고 방탕한 사상가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쾌락이야말로 행복의 기초이나, 쾌락만을 추구하면 그에 수반되는 고통이 더 클 것이라는 지론이다. 쾌락이란 고통의 부재이다. 쾌락의 추구는 고통의 수반으로 결국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절제하여 감각적인 쾌락을 물리치고 정신적인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자를 늘리지 않아도 분모를 줄이면 값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석가는 한 인간으로 태어나 온 중생이 생로병사로 고통받는 것을 보고 출가를 했다. 스승에게 배우기도 하고 고행도 해보았으나 깨달음을 얻진 못 했다. 수행방법을 바꾸어 보리수 아래에서 조용한 명상에 들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보살이라고 불렸다. 보살은 보리살타의 약어로써, 보리는 깨달음, 살타는 중생이라는 뜻이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중생은 모두 보살이며,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가 보살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보살이다. 깨달음을 원하지 않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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