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7.(일)
옳은 선택이었다. 이 글을 세 번째로 선택한 것은.
앞서 두 권을 읽으면서 이리 쉬운 문체로 그리 무거운 글을 쓴다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세 번째 글은 만만치가 않았다, 도무지 알 수 없다. 현실과 환영의 구분이 쉽지 않았고 생존과 죽음이 확연하지 않았다. 복선의 연속이었고 시제와 화자가 왔다 갔다 했다. 인선을 병원에서 보고 그녀의 부탁을 받고 제주 집을 찾아가는 길이 꿈결인지 현실인지. 공방에 앉아 물을 끓이려던 저만치 멀쩡히 앉은 인선이 환영인지 아닌지.
두 손으로 묻은 아마가 죽은 건지 살아있다는 건지. 어깨에 실려 느껴지는 새의 무게가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그러하니 그녀의 단어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글줄 하나가 모두 복선이다.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하는 인선의 어깨에 아마가 앉아 있었다. 새를 구하러 간다. 인선의 부탁으로.
내가 삐이 울면 깨어날 거다. 인선이 아침마다 암막 천을 벗길 때 그랬던 것처럼. 앵무새가 원래부터 이렇게 우느냐고. 글쎄 처음부터 이렇게 울었다고. 모르지 밖에서 우는 새한테서 배웠는지. 까마귀를 따라 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니. 인선은 말한다.
그녀와 공동작업을 위해 함께 했던 때, 간간이 들려준 자신의 엄마 얘기와 그녀의 인터뷰 작품 속 증언자의 음성. 그리고 엄마의 방과 공간에 소장된 비밀스런 문서와 사진 뭉치들. 엄마가 모은 것과 이를 토대로 인선이 얻어낸 증언과 스크랩 뭉치. 인선이 갖고있는 기록들.
한라산을 포함하는 그 안쪽 지역을 疏開하며 해당지를 통행하는 자를 폭동으로 간주하여 이유 불문 사살한다는 내용의 포고문.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열일곱의 언니와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막내 동생과 오빠의 시신을 뒤지던 열세 살의 엄마, 죽은 이의 얼굴에 내려앉은 녹지 않든 눈발의 결정체를 기억하는.
또 다른 증언. 운동장에 소집하여 논밭이나 백사장으로 옮겨가 사살. 감쪽같이 사라진 흔적과 일본 후쿠시마 해역으로 쓸려 내려갔다는 시신들.
’애기를 안고 서 이신 여자들을 봤다곡. 여자 셋이 젖먹이를 보듬곡 붙어 서 이서서. 네 살, 일곱 살, 많으면 열 살 먹은거 같은 아이들 일고여덟이 그디 모여 이서서.‘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외삼촌이 보도연맹 가입자 만 명 정도와 함께 경산에 있는 경북지역 코발트 광산에서 처형되기까지 감옥에서 전해 온 편지. 그 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긴 서사.
“경북지구 피학살자 유족회 /강점심 귀하
인선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평생을 함께 한 유족회와 그 후 인선이 찾은 유족회장의 엄마에 대한 증언.
이 모든 것이 딸의 눈과 입을 통해 전해진다.
그리고 스물세 살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고 사진관에서 찍힌 그녀의 아버지. 15년을 햇빛을 못 보고 버섯같이 히영한 아버지와 외삼촌과의 시간 겹침. 엄마는 오빠의 안부를 묻기 위해 아버지와의 첫 만남.
스스로가 변형되는 것.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 군경.
제목이 뭐야? 인선이 물었다.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생각해보니 내가 제목을 묻지 않았어.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주전자와 머그잔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며 인선이 되뇌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아흔아홉 그루의 통나무를 들에 심어... 늦어도 11월 중순에 사람들을 모아 함께 나무를 심고...
아니 그보다 먼저 미리 목 작업하는 게 가장 큰 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