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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Dec 19. 2023

영화 '괴물' :스포일러 없는 리뷰

당신이 꼭 이 영화를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래전에 본 일본 영화인데, 꽤 오래, 아직도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있는 작품이 있다.

겨울산에서 버스가 구르는 대형 교통사고가 난다. 

버스 안에는 엄마와 딸이 타고 있는데,

이 사고로 엄마의 영혼아 딸의 몸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딸의 몸으로 아내가 들어가 버린 것이다.

아내가 죽지 않고 살아온 건 다행인데, 모습이 아내가 아니라 딸이다.

딸인데, 확실히 아내다. 그럼 딸인가? 아내인가?

이 영화의 제목은 '비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원작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 심리 스릴러 작가로 입지가 상당해 보인다.

마지막 반전이 놀라운 '용의자 X의 비밀'도 그의 작품.

분명 내공 있는 작가인데, 그는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난 그게 궁금했다. 아내인데, 딸인 존재를 왜 만들어야 했나?      

그리고 결말에 분명 아내지만 딸로 살아가게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며 내 안에 낯선 생각 하나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난 그냥 요즘 핫하다는 '서울의 봄'을 보면 될 거 같은데

우리 막내는 굳이 영화 '괴물'을 보겠다고 했다.  

접속 무비월드인지, 출발 비디오 여행인지 살짝 맛보기로 그 영화를 소개하는 걸 봤는데, 

굳이 극장까지 가서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초등학교와 아이들, 그리고 억울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인가?   

극장의 상영시간을 확인해 보니, 하루 딱 한 번 상영이다. 

흥행과는 상관없는 영화, 재미없단 얘기다.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올 때 그 허망한 기분을 생각하면

다시 생각하자! 그냥 '서울의 봄'보자! 설득해 봤지만, 

결국 우리 고집 센 막내가 만만치 않게 고집 센 나를 이겼다.

이 영화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은 '아무도 모른다'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리고 '브로커'를 봤다. '아무도 모른다'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매우 강렬했다.

구글에서 찾은 이미지
구글에서 찾은 이미지


구글에서  찾은 이미지


'브로커'는 강렬하다가 결말 부분에 모성 판타지로 흘러가는 게 살짝 불편했는데

마지막에 눈물샘이 폭발하고 말았다. 적어도 만들어진 아이는 태어나게 하자는 

감독님의 훈화 말씀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 '고딩엄빠'를 볼 땐 안 그랬다. 아무리 저출생이 문제라 해도 

고등학생 엄마한테까지 모성을 강요하다니! 분노했었는데...

이런 걸 예술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그의 영화는 깐느가 인정할 만큼 예술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솔직히 오락보다는 숙제에 가까운 느낌이라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나는 밥 짓고, 아이 기르고, 운동 정도 하는 아줌마다.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 마음속 칼날이 무뎌지게 그냥 놔두고 싶은 요즘이기 때문이다. 

물론 언젠가는 볼 것이다. 하지만 굳이 당장 보고 마음 무거워지는 건 싫은데

요 꼬마 녀석이 뭘 안다고 이 영화를 보자고 하는 건지... 


영화를 보는 내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학교 폭력이에요? 난장, 진상 떠는 학부모가 괴물이라는 건가요? 아동 학대 이야기예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 지루한 시간이 오래 이어지다 영화 중후반부에 이르자 

감독은 관객에게 아주 선명하게 잘 보이는 안경 하나를 관객에게 씌워준다.

그 안경을 쓰는 순간, 첫 장면부터 그 모호했던 모든 상황이 한방에 해결된다.  

그리고 그 안경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걸 우리 모두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닥친 어떤 문제들을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주제를 좀 더 확장해 보면, 

이 세상엔 말할 수 있는 슬픔, 세상이 허용하는 비밀을 가진 사람이 있는 반면,

말할 수 없는 어떤 슬픔, 누구에게도 말하기 불편한 비밀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영화 '괴물'은 말할 수 없는,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종류의 비밀'을 가슴에 품고

힘들어하는, 너무너무 속 터지는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다시 영화 '비밀'로 돌아와서.

늘 생각했다. 형식보다 중요한 건 내용이라고. 

겉모습보다 중요한 건 내면이라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오래전 영화 '비밀'을 본 뒤, 내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정말 내면만 그렇게 중요할까? 내면은 분명 아내지만, 외형은 딸이다.

결국은 딸로, 외형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영화를 본 관객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면에 묻혀 등한시된 형식과 겉모습의 중요성에 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념을 부수고 싶은 작가의 결기가 느껴졌다. 

이래도, 이래도 내용만 중요하다는 뻔한 말만 계속할 거야? 

적어도 영화'비밀'이 나에겐 그랬다.

 

영화 '괴물'도 당신에게 그랬으면 좋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세상, 관점, 프레임. 그 모든 것으로 해석이 안 되는 현상이 있다면

다른 안경을 쓸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잘 볼 수 있는 안경을 거부하고 무턱대고 괴물타령을 하는 건 

요즘 말로 힙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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