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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파괴와 AI는 [어쩔 수가 없다]

박찬욱의 새 영화 리뷰

by 임지원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세 번 보고 리뷰를 쓴 적이 있다.


박찬욱 영화에 대한 나의 각별한 애정과 나만(?) 발견한 정치적 메타포 그리고 영화를 같이 본 MZ세대의 큰 딸과의 밤샘 수다를 담았는데, 이 글이 꽤 인기가 있어서 글 올리고 한 며칠 꽤나 재미가 있었다. 그때 딸은 서래의 살인을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고 분석했었는데 결국 그 주제로 졸업논문을 썼다. 논문을 쓰며 헤어질 결심 대본집을 얼마나 보고 또 봤는지 유명한 성경구절을 암송하듯 서래의 대사를 읊는다. '내가 그렇게 나쁜가요?' 이래저래 헤어질 결심과 헤어질 수 없는 동거를 하던 중 들려온 반가운 소식.

박찬욱, 그의 차기작이 개봉한다는 소식이다. 제목이 '어쩔 수가 없다' 벅차오르는 기대감에 진짜 안 보던 달력으로 보며 날을 셌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이 영화에 대한 그 어떤 작은 정보도 '모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유튜브 썸네일 무서워, 뉴스 언급 너무 무서워! 두 눈과 귀를 막으면서 까지 노력한 결과 배우 이병헌, 손예진 그 외 몇몇 인물 그 정도가 나온다! 말곤 진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스크린 앞에 앉는 데 성공했다. 엄마만큼은 아니어도 박찬욱 영화 마니아라고 할 수 있는(졸업논문까지 썼으니까!) 큰 딸은 표를 예매할 때 '제지공장' 그거 하나를 스포 당했다며 아주 억울해한다. 피는 못 속인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불이 켜지자 역시나 깊은 한숨과 함께 말문이 턱 막힌다. 그의 영화를 보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구겨진 어깨를 펴고 굳은 무릎 관절을 마시지 하며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금 몇 시인가? 문득 두피가 가려워 손이 머리로 올라갔는데 이상하다. 내 머리 왜 이래? 아! 나 오늘 미용실에서 머리 망쳤지. 정신이 나갔다. 그의 눈은 이번엔 남자를 본다. 가장, 남편 그리고 아빠. 그는 오래도록 여성을 바라봤었는데... 그렇지! 지금 온 지구가 AI, AI 너무 좋아, 너무 편해, 너무 훌륭해! 찬양에 몰두하지만 결국 AI에게 노동을 빼앗긴 인간은, 가장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AI전문가는 그 덕분에 인간이 더 많은 여가시간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정말요? 그래도 노동을 좀 하다가 여가를 즐겨야 재밌는 건데... 매일 여가만 즐기면 그게 그렇게 심심한 건데... 그리고 AI 덕 볼 줄 모르면 어떡해요? 심지어 취준생 상태인 딸은 아직 자신만의 노동을 가져본 적도 없는데 이미 뺏긴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니 더 답답하겠다.


"취준생이 보기에 너무 고통스러운 영화야... 으..."

"취준생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답답한 영화다. 답답해..."


이야기의 구성은 단조롭다.

실직한 가장이 재취업을 위해 살인까지 불사한다! 등장인물은 모든 면에서 과하다. 재취업을 하겠다고 사람을 죽이는 게 말이 돼? 그럼에도 왜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배우의 미친 연기력 때문인가?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사는 우리 집인데, 남편은 AI와 상관이 없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는? 동화를 쓰는 나는 안전할까? 전에 딸을 가르친 교수(국어국문과)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어떤 작가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AI에게 쓰라고 하고, 같은 구성으로 직접 썼는데, 나중에 보니 AI가 쓴 게 더 잘 썼더란다. 요즘 공모 관련 공지를 보면 AI로 작성하면 안 된다는 요건이 있기도 한데, 언제까지 그럴지 모르겠다. 잘 쓴다는 데 어떡해... 나 무서워. 인간이 사라지고 AI가 일하는 자동화된 공장의 모습은 산업화의 근사한 결과물인 줄 알았는데, 영화 속에선 공포 그 자체였다. 거대한 로봇과 아주 아주 작은 인간... 거대한 로봇의 움직임이 조금만 비껴가도 인간은 쉽게 파괴될 거만 같다. 그 속도와 움직임, 소음이 주는 불안감에 난 압도되어 온몸이 경직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단순히 AI가 초래할 미래에 대한 문제점만 비판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오래도록 자연을 파괴하고 제단하고 재건축해온 인간에 대한 비판이 더 큰 뿌리로 기저에 깔려 있다. 종이를 만든다는 명목 하에 나무(식물)를 파괴하고 그 파괴된 자연으로 인해 동물이 파괴된다. 돼지 살처분 같은 것을 말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 3단계 파괴 논리는 재난 서사라는 강의를 들은 큰 애의 주장이다.) 주인공인 만수(이병헌)는 식물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마당에 식물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는 식물을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분재라는 형태로 식물을 지배하고 파괴한다. 나무줄기를 철사로 꽁꽁 감는 장면에서 그의 손에 의해 똑 부러지는 장면이 강렬하게 클로우즈업 된다. 의도가 있는 연출이다. 더 솔직하게 그는 나무보다 나무로 만들어진 고급 종이를 더 숭배한다. 종이 만드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어마어마하다. 오죽하면 종이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채용 경쟁자로 보이는 인간을 잉여로 취급해 돼지를 살처분하듯 죽여버릴까! 식물, 동물, 인간까지 파괴한 주인공은 결국 혼자 남아 AI와 함께 불 꺼진 공장을 지킨다. 가정도 지킨다!? 영원히 지켜질까? 왜 인간은 그런 위태로운 선택을 자초하나?


그럼에도 이 심각한 주제의 끔찍한 영화를 보며 생각보다 너무 많이 웃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꽤나 긴 상영시간 동안 지루할 틈 없이 달려간다. (왠지 봉준호 영화 '기생충'의 느낌이 나기도!) 그리고 곳곳에 언급되는 감독의 작은 잔소리들이 날 낄낄 웃게 한다. 어쨌든 작품 속엔 작가의 생각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그는 실업에 대처하는 가장의 자세가 마음에 안 든다. 과도한 반려견 사랑도 살짝 불편하다. 왜 돼지와 반려견의 운명이 왜 그렇게 엇갈려야 하는가 말이다. 요즘 사교육 과열 양상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거 같은데, 자녀의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애를 쓰는 가장의 어깨를 다독이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냥 그런 줄 알고 흘러가는 우리 일상에 대해 그게 맞냐고 질문을 던진다. 그게 너무 뼈를 때린다. 개봉 첫날이고 문화의 날 행사과 겹쳐서인지 영화관 좌석이 거의 다 차 있었는데, 나만 웃은 건 아니다. 넋 빠진 듯 정신없이 웃었는데 웃음 뒤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의 질문이 훌륭했다는 증거다. 작은 아쉬움도 없진 않다. 최근 나의 광범위한 병렬독서 리스트 중 하나가 '살인자의 건강법'(아멜리 노통브)이라는 소설인데, 거기 죽음을 앞에 둔 문제적 작가를 인터뷰하러 온 기자가 이런 말을 한다.

"소설가란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이지 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소설에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닌데, 왠지 내 마음에 불꽃쇼를 일으키며 강렬하게 박힌 문장이라 여러 번 곱씹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박찬욱의 영화 속에 왠지 모르게 스며있는 그 '답'이라는 것이 살짝 불편하기도. 누군가는 많이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답'이란 게 또 어찌나 절묘하게 유머러스 한지! 그는 메타포의 신이다.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어쩌면 예술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답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이고 답답해! 하면서. 어쨌든 그런 문제로 그의 앞길(?)을 막고 싶지 않은 건 나의 팬심이다.


그나저나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이토록 명곡이었다고? 이제 알았네.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보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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