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시절을 떠올리며..
입사 이후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20년 넘게 공부만 하다가 회사라는 곳에 들어가 일을 하려니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런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신입사원에게 주어지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일 머리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나에게 업무를 가르쳐 주던 분은 까칠한 직속 여자 선배였는데 간단한 인수인계 이후에 다른 것은 바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을 처리하는 중 궁금했던 게 너무 많았고, 그 호기심은 다른 선배들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선배, 저 선배에게 매일 많은 것을 물어보고 또 그만큼 배워 나갔다.
그렇게 1년이 흘러갈 무렵 회계연도 말이 되어 연말 마감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담당 팀장님이 각자 맡아야 할 업무를 배분해 주셨다. 일주일 정도 기한이 주어졌는데 기한이 다가오자 이미 다른 선배들은 일을 끝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밤에 야근을 하고 있는데 일을 끝내고 가려던 선배가 살며시 내 자리로 왔다. 무슨 일을 하는지 보더니 다른 선배를 불러 같이 일을 도와 주기 시작했다. 그 두 선배의 도움으로 그 일은 그 날 밤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 때 얼마나 고마웠던지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회사를 떠난 분들이지만 한 번씩 생각나고 만나기도 하는 것은 이 때 받은 은혜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배라고 해서 다 후배를 챙기는 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선배보다는 지지하고 도와주는 선배가 훨씬 많았다.
신입으로 입사한 이후 근 4년간 새로운 신입 사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막내 노릇을 너무 오래 한다며 속으로 불만이 가득 찼다. 막내라서 담당했던 소소한 잡일도 싫었고, 선배로서 후배에게 주름도 좀 잡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선배라는 역할도 마냥 쉬운 게 아니다. 내가 후배로 남고 싶어도 계속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한 후배라는 역할은 영영 다시 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막내이던 시절이 가장 재미있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아직 업무는 미숙하지만 열정과 성실함으로 똘똘 뭉쳐 있던 내 모습과, 막내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좋은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신입 사원에게 회사에서 월급을 지급하는 건 일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그 직원에 대한 일종의 투자라는 이야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공감이 간다. 열심히 하긴 했지만 부족한 것 투성이였는데, 그래도 투자해 준 회사 덕분에 잘 적응했고, 시간이 흘러 일도 제법 잘한다는 소리도 듣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뒤로 후배가 많아졌다. 이제는 회사에서 선배보다는 내가 도와줄 후배가 많아진 연차가 되었다. 회사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선배가 되어야 할텐데. 그들에게 보이는 내 뒷모습이 어떨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리숙하던 어린 시절 내게 손을 내밀어준 그 때 그 시절 그 선배들이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