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락 May 09. 2021

소소한 에세이

미래에 대해 알려주는 구슬이 있다면

남편과 평소 자주 나누던 대화 주제가 있다. ‘과연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 이다. 남편을 너무 사랑하는 나는 오랫동안 둘이 같이 살다가 한날 한시에 같이 자연스럽게 눈을 감는 것이 희망하는 죽음이다. 의도된 죽음이 아닌 경우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겠지만 가끔 그런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해 알려주는 구슬이 있다고 해도 사실 보고 싶지 않다. 지금 현재 내게 주어진 삶을 그저 충실하게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한번은 의무적으로 봐야 한다면, 과연 우리 부부 중 누가 먼저 이 세상 여행을 마치고 떠날지 알고 싶다. 그에 따른 죽음을 미리 대비하고 싶기 때문이다. 


소노 아야코의 『나다운 일상을 산다』에 담담하게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을 대비하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63년을 해로한 저자는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남편을 다시 집으로 데려오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죽을 때까지 평소처럼 지내게 해주리라’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남편이 죽기 전 1년 반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익숙한 공간에서 가장 익숙한 모습으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나도 그런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병원에서 호흡기에 의지하여 겨우 생명을 유지하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


어제 엄마와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눴는데, 엄마는 남자가 혼자 남게 될 경우 추해지고 가족에게 도움이 안 되는 천덕꾸러기가 된다고 했다. 가까운 막내 이모를 보더라도 그렇다. 이모부가 몇 해 전에 먼저 떠나고 이모만 홀로 지낸다. 이모는 지금 혼자 지낼 만한 조그마한 아파트로 이사하여 둘째를 출산한 딸과 손녀딸들을 돌봐주고, 가끔 반찬을 해서 자녀들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그밖에 두루두루 자식들에게 도움을 준다. 그런데 만약 반대의 경우라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이모부 혼자서 반찬을 만들기도 어렵고 어린 손녀를 돌봐주는 것도 어렵다. 오히려 자녀들이 돌봐줘야 추하지 않게 지낼 수 있으니 자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자식도 없으니 만약 내가 먼저 죽고 남편이 홀로 남게 된다면, 추하지 않게 지낼 수 있는 방법들을 미리 모색해 봐야 할 것 같다. 현재의 남편은 요리도 나보다 잘 하고 깔끔하게 지내는 편이니 어쩌면 괜한 우려일 수 있다.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르지만 남편과 오래오래 사랑하며 즐겁게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때 그 시절 그 선배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