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카리 Mar 29. 2022

카카오 주주총회엔 주총꾼이 있을까?

카카오 본사에서 펼쳐진 주주총회 참석기

금리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지금까지 파란 글씨로 '-'가 붙은 주식 잔고를 보며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가!

오늘이야말로 귀여운 통장에 담긴 나의 억울함을 표출할 때다, 개미들이여 나를 따르라!

나는 개미 주주다.




작년 한 해 동안 삼성전자에 이어 국민주로 등극한 카카오.

나 또한 카카오에 꽤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주주다.

주식 액면분할 전, 16만 원(현재 기준 32,000원)에 1주를 처음 산 이후로 1달에 1주 정도 모았었다. 현재가 기준 수익률 200%라는 어마어마한 투자 감각이다.

분할 전 30만 원(현재 기준 6만 원) 정도 됐을 때, 너무 비싸졌다고 판단하고 매수를 멈췄다. 아... 안돼!


작년 6월, 카카오 주가가 17만 원을 돌파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시뻘건 주식 잔고가 이토록 뿌듯할 줄이야! 빠빠빨간 맛!

'너무 올랐나?' 하고 몇 주 팔았던 건 분명 잘한 짓이었다.

하지만 13만 원까지 떨어지자, "저가매수!!! 가즈아!!!"를 외치며 카카오를 추가 매수했는데...


미국발 금리 인상 예고와 카카오 (전) CEO 내정자 파문으로 지금의 파란 계좌가 완성됐다.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눈물겨운 파란 게좌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 듯, 약간 불그스름해질 기운이 보였으니...

카카오가 2달 만에 10만 원에 복귀했다.




이 와중에 카카오에서 주주총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1. 일 시: 2022년 3월 29일(화) 오전 9시
2. 장 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첨단로 242, 스페이스닷원 1층 멀티홀


아, 맞다, 카카오는 본사가 제주도에 있었지!

어, 근데 나도 제주도에 있네?


마침 내 휴가와 일정이 겹쳐 생애 첫 주주총회를 가보기로 했다.

어디선가 들었던 '주총꾼' 썰을 기대하며 두근대는 마음으로 카카오에 방문했다.

아쉽게도 코로나라 프렌즈샵이나 카페는 열지 않았고, 주주총회가 열리는 곳만 덜렁 열려있었다.


카카오에 있는 코딩하다 돌이 되어버린 안쓰러운 개발자. 음... 난가?


카카오 IR팀으로 보이는 분들이 밖까지 나와서 친절히 맞아주신다.

아니... 저 그냥... 개미인데... 이렇게까지 환대받을 줄이야...

일단 손소독과 체온 측정을 하고 마스크까지 하나 받았다.

신분증 검사 후, 내 귀여운 주식 수를 확인하고, 의결사항에 대한 찬반을 종이에 미리 적는다.

어... 음... 잘 모르겠으니까 다 찬성해야지~ 동그라미 13개~

귀여운 주식으로 반대하기가 괜스레 눈치 보였다. 물론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내 자율적인 결정권이지만.


본격적으로 주총이 열리는 곳에 입장했다.

드넓은 강당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200명은 넘게 들어갈 강당에 30명도 안 되는 사람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 그마저도 IR팀이나 관계자를 빼면, 진짜 주주로 참여한 사람은 15명도 안 되는 것 같다.

주총꾼으로 보이는 나이 드신 분은 없었다. 아쉬웠다.


제주까지 출장 오시기에는 너무 힘드셨을까? 카카오가 제주 시내에서도 떨어져 있으니 택시비도 안 나올 것 같긴 하다.

어쩌면 그걸 노리고 카카오 본사를 제주에...?


강당 내부는 안타깝게도 사진촬영이 불가능했다. 내부로 들어가는 문에서. 열감지 카메라가 보인다.


본격 주주총회 시작

신문기사에서 본 카카오 CEO(여민수 공동대표. 이제는 전 CEO)가 주주총회 개회를 선포한다.

교장님 훈화말씀처럼, 주주와 교감 따윈 없다. 조금만 더 말을 빨리했다면, 바로 비트 틀고 랩 녹음해도 됐다.

그다음 감사위원이 감사 결과를 읽는다. 마찬가지로 벽 보고 말하는 듯하다.


다른 주주분들은 뭘 하시나 살펴보니, 기자님들인지 노트북을 하나씩 가져오셨다.

메신저를 하는 것 같... 다는 느낌은 그냥 느낌이겠지? ^^

나만 앞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다들 무슨 사연으로 오게 됐을까?


주주총회가 일방적이고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간에, 갑자기 여민수 대표가 벽, 아니 청중을 향해 한마디 한다.

"질문 있으십니까?"

나는 있을 리가 없지만, 혹시 있으...ㄹ...


없습니다


응???

1초 만에 나온 대답이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기다릴 새도 없이 없다고 단정한다고?

대답한 사람의 위치를 보니 IR팀인 것 같았다. (그럼 마이크는 왜 준비해두신 거죠?)


아하, 이런 식으로 빠른 진행을 유도하고 혹시 모를 불청객(주총꾼)을 차단할 목적이구나!

(아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비슷한 일은 의결에서도 발생했다.

"이번 의결안건은  ~~~입니다. 반대 의사가 있으신 분은 자리에서 기립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정서에 딱 적절한 방법이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튀지 않으려 하는 (그런 환경에서 교육받은 대부분의) 한국인은 일어서기 힘들 것이다.


문득 '반대하며 일어서 볼까?' 생각이 들었다.

일어서면 어떤 일이 생길까? 격렬한 토론의 장이 될까?

두근두근, 기대되잖아!


그리고 누군가 내 생각을 대신 실천해 주셨다.

이사 선임 안건에서 반대하는 뜻으로 두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는데...!


조수용 대표이사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본 안건은 주주의 과반수 동의를 얻어 가결되었습니다.
(망치) 땅땅땅


아하, 그런 거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구나~

주주총회는 답정너였고, 그냥 형식적인 자리였다.

하긴 김범수 (전) 의장의 의결권이 압도적으로 많긴 하니까, 여기 온 개미 몇 명이 뒤흔들어봤자 얼마나 되겠어.

아마 사전에 다 의견을 수합했을 것이다. 내가 입구에서 동그라미 친 것처럼, 다른 대주주한테 물어봤겠지?


나중에 카카오 주주총회 페이지를 확인해보니, 대부분 99% 이상의 찬성률을 보였다.

전체 의결권 수는 2억 개라고 하니, 내가 반대해봤자 0.00000001% 정도 영향이 있다.

새로운 세계를 또 한 걸음 걸어봤다.


예쁘게 정리해서 나눠주셨다.




유튜브 1.25배속을 방불케 하는 주주총회는 그렇게 22분 만에 끝났다.

생각만큼 소란스럽지도, 주주와 소통이 있지도 않았다.

공산주의에 국회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역시 자본이 최고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한 IR팀의 인사를 뒤로하고, 카카오 스페이스닷원에서 멀어졌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사실 먹을 거나 굿즈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소심하게 기대해봤지만, 그런 건 없었다.

코로나라서 그런 거겠지? 그렇다면 내년엔


카카오가 잘 커서 내 주식 잔고를 무럭무럭 자라게 해줬으면 좋겠다.

오늘도 염치없이 불로소득을 염원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1년 뒤의 나에게 쓰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