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저거 스타벅스?
바닷가에 쓰레기가 많은 걸 본 적이 있는가?
아마 못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게 호들갑처럼 보일 수도 있다. 많지도 않은 쓰레기를 뭘 줍나, 하면서.
어떻게 보면 제로 소주와 비슷하다. 원래 소주에는 당류가 없었는데, 마치 당류를 없애고 새로 출시한 것처럼 이름을 지었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똑또..ㄱ...)
사람들이 주로 가는 해수욕장은 관리가 참 잘 되어 있다. 특히 여름에 해수욕장이 개장하면, 지자체든 마을 공동체든 자주 관리하기 때문에 쓰레기가 거의 없다. (그런 이유로 해수욕장으로는 플로깅을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 머릿속엔 쓰레기가 쌓인 바다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해양 정화단체는 정반대다. 쓰레기를 찾아다니는 사냥꾼 같다. 쓰레기가 많은 곳을 모니터링하거나 제보받고 달려간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바다엔 쓰레기가 아주 많다'는 인식이 박힐 수밖에!
수많은 쓰레기를 줍다 보면 별의별 쓰레기가 다 나온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하나씩 사진을 찍다가, 이제는 흥미가 점점 떨어진다. 신발, 칫솔, 주사기, 아기 장난감, 커피믹스, 중국에서 넘어온 페트병, 페인트통, 안전모, 비료 포대, 형광등... '이게 왜 있지?' 싶은 기상천외한 쓰레기가 다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온 세계의 쓰레기통이 사실 바다인걸.
<가장 흔하고 많은 쓰레기>
스티로폼과 페트병, 그리고 밧줄 같은 어구.
스티로폼은 눈이 온 것처럼 많다.
페트병은 역시 삼다수가 가장 많고, 중국 페트병도 어마어마하다. 중국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해류의 방향 때문에 많은 거니까. 물론 중국산 쓰레기가 많긴 한데, 우리나라 쓰레기도 동남아나 대만에서 많이 발견된다고 하니, 한 나라의 문제는 아니다.
스티로폼도 대개 어업에 쓰는 용도가 많다. 바다가 무대인 어업이니만큼, 그 쓰레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밧줄이나 그물은 크기와 무게가 무지막지해서 수거도 힘들다. 유령 어업으로 물고기가 걸려 죽으면 썩은 냄새가 매우 고약하다. 어업 쓰레기, 참 문제다.
<가장 놀라웠던 쓰레기>
은하수 크림속단설기빵 비닐 (made by 평양종합식품합작회사)
내가 왜 이걸 그냥 버렸을까? 이런 쓰레기는 매우 희귀한 쓰레기라 쓰레기 줍는 사람들 사이에선 수집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경력이 얼마 없을 때 줍는 바람에 희소성을 몰라봤다. 북한 쓰레기는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그나저나 무슨 맛일까? 통일을 기다리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가장 기분 좋은 쓰레기>
스타벅스 리유저블 컵. 1,000원 개꿀.
개인적으로 컵 보증금제가 하루빨리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광지 주변에는 플라스틱 일회용 컵이 너무 많다. 물론 일부러 버린 사람은 많이 없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스타벅스 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스타벅스는 시민의식이 투철한 사람만 가는 곳인가? 오우, 그럴 리가. 수많은 스타벅스 방문객 수보다 스타벅스 컵 쓰레기가 많이 없는 이유는 보증금제 아니면 설명이 잘 안된다.
나는 왜 쓰레기를 주울까?
'환경을 위한 마음'도 있긴 하지만, 그 마음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쓰레기는 제주 전역에 매일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나는 한 번에 많아야 4~5 마대를 수거한다. 사실 내가 쓰레기를 주워봤자 환경에 영향을 미치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나. 주우면 다음 날 또 쌓이고, 치우면 또 밀려온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는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비로소 끊어진다.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것으로 해양쓰레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쓰레기를 줍는 이유가 단지 환경을 걱정하는 것이라면, 금방 지쳤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고쳐먹고 다른 접근 방법을 고안했다.
이건 '운동'이다.
나는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만 두드리는 사무직이다. 활발한 신체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 성인병은 내 단짝이 되어 건강을 잃을 것이다. 건강검진 문진표에 '숨찬 활동을 일주일에 얼마나 했나요?'를 '없음'이라고 대답할 순 없다. 인바디 검사에서 근육이 '표준 이하'로 나오는 것도 (비록 아무것도 안 하지만) 용납하기 힘들다. 물 잔뜩 먹은 밧줄을 아령 삼아 당기고, 땅에 떨어진 쓰레기를 스쿼트 자세로 줍다 보면 은근히 근육이 땅겨 온다. 마대를 둘러메고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 100m를 걷는 것이나 파도를 이겨내며 수영 100m를 나아가는 유산소도 빠질 수 없다. 완전 무료 친환경 헬스장이다. 헬스장 회원권을 끊어두고 마음의 위안을 받는 사람들처럼, 나 또한 운동한다고 자부하며 뿌듯하다.
또한 이것은 '놀이'다.
그 누구도 내게 쓰레기 할당량을 지정해 준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높은 기준을 삼는다. 다른 사람들이 마대 하나를 손에 쥐면, 나는 여분 마대 2개를 더 챙겨 빠르게 채우려고 열의를 불태운다. 빠르게 채우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한 법, 나는 밧줄을 자르기 위해 10만 원짜리 팔뚝만 한 함석가위를 샀다. 나만의 놀이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목을 끌 수 있고,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욕구(관종)도 충족할 수 있다. 완전 공짜 친환경 4D 오락실이다.
쓰레기를 줍다 보면 기대하진 않았지만 의외로 얻는 것도 많아서 좋다.
우리 동네에는 해양 쓰레기가 집중적으로 몰려오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쓰레기를 주우면 고양이를 많이 만난다. 그런데 고양이가 정말 예쁘다. 게다가 가까이 온다. 그렇다고 와서 치대는 정도는 아닌데, 2m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나를 그윽하게 슬며시 바라본다. 평소에 고양이를 많이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 고양이는 너무 아름다운 미묘다. 요새는 못 본 지 오래되어 아쉬운데, 만날 수 있다면 다시 가고 싶어질 정도다. 얼마나 귀엽냐면...
ESG 경영이 중요해지면서 많은 단체나 기업에서 환경단체에 후원과 지원을 보내준다. 지원품도 대나무 칫솔, 샴푸바(비누 형태의 고체 샴푸), 업사이클링 가방, 열쇠고리, 텀블러 등 친환경 제품이 많다. 친환경 제품이라도 쓸데없는 소비는 오히려 환경을 망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을 물건은 받지 않는다. 집에 쌓인 대나무 칫솔을 다 쓰려면 하루 7번은 양치질해야 하므로, 칫솔질에 진절머리가 날 치아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쓰레기를 줍고 있을 때면 지나가시는 분들이 한두 마디씩 던져 주신다. "쓰레기 주우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좋은 일 하시네요." 그러다 가끔 같이 동참하시는 분들도 있고, 음료수를 사 오시는 분들도 계신다. 인근 카페 사장님께서 음료수를 공짜로 제공할 테니 끝나고 오라고 초대해 주신 적도 있다. 자원봉사자끼리 맛있는 음식이나 과일을 나누기도 하는데, 나도 받고만 있을 수는 없어 곶감을 종종 들고 간다. 이렇게 서로 마음을 나누다 보면, 나는 봉사를 하러 왔는데 얻는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은근히 즐기다 보면, '이번 주는 어디로 쓰레기를 주우러 가볼까~'하고 주말을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