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브닉 카우르, <조류를 거슬러>
여기 라케시(Rakesh)와 가네시(Ganesh), 두 어부가 있다. 친구인 두 사람은 모두 뭄바이에 살고 있는 콜리족(Kolis)이다. 하지만 라케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어업을 하며 살고 있고 가네시는 원양 어선을 운영하며 현대적인 조업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
먼저 라케시의 가정을 보자. 막 아기가 태어났고 어머니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신의 축복을 아기에게 내린다. 몸에 열이 있거나 아플 때에도 향과 기도로 치료하고 집안을 소독한다. 그는 조류의 흐름을 보며 조업한다. 집과 가까운 바다의 얕은 곳으로 배를 몰아 가서 가족이 먹고 가족을 부양할 만큼만 물고기를 잡아온다. 그런데 그 많던 물고기를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매번 노동에 비해 낚이는 물고기는 거의 없고 쓰레기와 해파리만이 가득한 그물이 올라온다. 게다가 아기가 계속 아프다. 열이 있고 잠도 못 자고 울며 보챈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갔더니 심장에 작은 구멍이 있고 혈류가 정상적으로 흐르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다.
친구 가네시는 ‘콜리 족의 마지막 어부’라고 적힌 차를 몰고 원양어업에 나설 배를 살펴보러 간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공부하고 돌아왔으며 레이다 망을 살피고 LED 집어등을 서야 물고기를 대량 수확할 수 있다고 계속 말한다. 아내가 불법이고 위험하다고 만류하는데도 그는 많은 물고기를 수확해야 빚도 갚고 사업이 확장된다고 한다. 조업하는 인부들에게도 임금이 밀려있고 대출받은 돈도 많고 이미 장인에게도 돈을 빌렸고 조합에는 기본적으로 내는 관리비도 못준다고 소리치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가네시의 배도 투자와 설비에 비해 물고기를 많이 못 잡고 있는 형편이다.
라케시와 가네시가 오랜만에 만나 어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조업 방식이 다른 두 사람은 티격태격할 수밖에 없다. 가네시는 라케시에게 자신처럼 아파트에 살고 자가용을 몰며 원양어선을 타고 물고기를 낚으라고 한다. 하지만 학교교육도 별로 받지 않고 전통적인 어업에 기대어 수확도 작은 라케시는 가네시의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다.
“적게 잡아도 안 굶어.”
“매번 쓸어담으면서 물고기 없다고 하지마.”
“산란 안 한 물고기 잡으면서 물고기 없다고 하지.”
급기야 두 사람은 상대방의 어업 방식과 생활방식에 못마땅해 불만을 터뜨리고 만다.
-큰 배 타고 현대적 어업을 해. 너처럼 전통어업 고집하니까….
-넌 지금 돈의 노예야.
-그럼 넌 매일 푼돈으로 개처럼 살아가잖아.
이후 라케시의 아이는 계속 차도가 없자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치료도 받는다.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조업마저도 잘 안 되자 배를 다른 사람에게 팔고 혼자 작은 배를 몰기로 결심한다. 다행히도 아기는 자라면서 조금씩 차도를 보인다.
가네시는 중국인들이 조업하고 있는 구역을 레이다 망으로 살펴본 뒤 조합에서 큰 돈을 빌려 마지막 승부를 노린다. LED 집어등으로 감시정을 피해 위험한 조업을 감행하게 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그래서 빚을 갚기 위해 아파트와 가지고 있던 금 등을 모두 처분하게 된다.
“두려워말지어다 두려워말지어다.
조류는 바뀌니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콜리족인 너는 두려워말지어다.”
감독은 오랜 시간 라케시, 가네시와 함께 교류하며 영화를 제작해 서로가 카메라와 관계없는 관계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카메라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극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내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경계가 아리송할 만큼 캐릭터와 스토리가 드라마의 구조를 띠고 있고 캐릭터가 살아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인 사르브닉 카우르는 전작을 촬영하던 중 라케시를 만나게 되고 전통어업을 하며 맹그로브 숲을 지켜야 한다고 역설하며 해양학에도 뛰어난 이 인물에 놀라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인 가네시도 함께 만나게 되었고 두 주인공과 함께 6~7년간 영화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들과 오랜 시간 작업을 하면서 일상을 기록하던 감독은 -특히 아기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는 가족, 친구, 지지자로서 함께 할 만큼 친분이 생겼다. 그래서 감독과 배우, 시나리오라는 설정과 경계가 없어졌고 그들은 서로 카메라로 맺어진 관계를 넘어섰다고 한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이야기의 전개는 기후위기의 시대에 바다를 대하는 그들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감독은 이야기를 뽑아내려는 스토리텔러가 아니라 인물과 사실을 정직하게 보고 전달하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라케시의 아기가 아프고 치료받는 이야기, 가네시가 불법 어업을 감행하고자 금을 팔면서까지 대출을 받는 이야기 등은 픽션이 아니라는 걸 관객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드라마틱 하다. 갈등의 구조가 첨예하게 대립되면서 절정으로 치달아가는 구조를 띠고 있다. 그리고 보통 다큐멘터리에는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을 인터뷰한다. 설명을 위해 내레이션이 들어있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카메라를 의식하는 않는 것(카메라를 응시하지 않은 상태)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픽션이 아닐까 하는 혼동을 주었다.
사르브닉 카우르의 작품 <조류를 거슬러>는 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국제영화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미 선댄스영화제에서도 수상하고 인도 내에서도 많은 상을 받았다. 이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전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울림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다가 영화를 본 후 두 가지를 떠올려 보았다.
먼저 환경영화로서이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의 기후 위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서이다. 누구나 기후 변화에 대한 뉴스를 보며 자신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이제 없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를 맞이한 지금의 상황에 오기까지 각자의 방식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해야 할 때이다. 이제 뭄바이에서 전통적으로 물고기를 잡아오던 콜리족은 기후변화로 인해 더이상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개인의 문제로 접근했지만 이미 전 세계의 문제이다.
그리고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연 우리는 서사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어느새 드라마틱한 요소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라케시가 큰 돈을 벌어 다행히 아기가 낫지 않을까, 또는 가네시가 큰 수확을 해서 어선을 가득 채우고 오지 않을까 하는 극적인 반전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논픽션을 제작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과정을 따르려는 추구를 잊어야 하고,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내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조류를 거슬러>를 통해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지는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기후 위기의 시대를 지속 가능한 미래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촬영하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 편의 영화는 세상을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
- 글 : 소노스(SONOS)
■ 출처 및 참조 : 감독 사르브닉 카우르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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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oveablefest.com/sarvnik-kaur-against-the-tide-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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