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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Oct 05. 2023

[게임] 에디스 핀치가 남긴 것

What Remains of Edith Finch



 한 가계의 구성원 대부분이 비극적으로 요절했다면 그것은 저주라 부를만하다. 그리고 핀치 가문은 실제로 저주받았으며 에디(Edie)의 찢어진 노트 나머지 페이지에는 저주의 실체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에디만이 그 저주의 실체를 알고 오랜 시간 저주를 피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돈이 에디스(Edith)를 데리고 집을 떠나던 날 밤 그녀 역시 어딘가로 가버렸다(gone).


 생이 끝나는 순간만을 목도하자면 어떤 죽음이건 별로 대수로울 일은 없다. 호흡이 멈추고 곧 모든 생명 활동이 정지한다. 결국은 모두가 한번은 겪을 이  즐거울 것도, 불편할 것도 없는 사건에, 사건의 주인이 살고 행했던 서사가 덧붙여지면 그 죽음에는 나름의 의미가 생긴다. 안타까움, 통쾌함, 허무함, 우스움, 불가해함 등등. 모아놓고 보면 저주에 가까운 운명의 연속도 개별적 의미에서는 어차피 한번 일렁였다 꺼지는 불꽃의 뒤척임과도 같은 것... 나고 죽었다는 것은 그래도 생명이 한번은 밝게 빛났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


 우리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는지 모른다. 허락된 것이 적은, 짧고 가련한 생은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그렇다고 생이 길다는 것이 반드시 축복일 수만도 없을 것이다. 핀치 가문의 사람들 중 저주에 맞서려 하거나 저주로부터 도피하려던 몇몇은 허망하게 사고로 사망했지만,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인물들 만큼은 오히려 행복감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포식을 하고, 하늘을 날며, 물속을 헤엄치고, 왕이 되어 왕관을 머리에 쓰고... 이렇게 사라져간 짧은 생들에 비하자면 많은 자손들의 탄생과 죽음을 오랫동안 지켜봐야 했던 에디의 인생이 오히려 저주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지만 에디스 핀치가 남긴 것은 결코 저주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기적 같은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돈의 손에 이끌려 집을 떠난 에디스 핀치는 핀치 가문의 마지막 사람이 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한 그녀의 짧은 삶은 또 하나의 삶을 탄생시켰다.


 새롭게 탄생한 생명에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저주라면 저주랄 수 있을 핀치 가문의 내력이 전해졌을지. 아니면 그 모든 우연의 사슬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돌아보면 한번 웃고 말 희극으로 기억될만한 평범한 삶을 살는지. 어쨌든 에디스는 자신이 떠나갔던 집으로 돌아와, 이 집에 남겨진 가족들의 기억 속을 걸으며, 곧 탄생할 아이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바랬을 것이다. 혹여나 남들보다 조금 부족한 짧은 생을 살게 되더라도 그 삶을 저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처럼 최선을 다해 세상에 태어났다는 행운과 기회를 누리기를... 삶이 언제 끝날지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살아있는 모든 순간 기적처럼 주어진 삶을 찬란하게 살아가기를...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핀치

너에 대하여 알기 전까지는 그랬지

이 모든 것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

영원히 산다면 이런 것들을 이해할 시간이 있겠지

지금으로선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다

이상하고 짧은 삶을 감사히 여기는 수밖에

이 일지는 너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네가 절대로 볼 일이 없으면 좋겠다

단지 널 만나고

이 이야기들을 직접 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걸 지금 읽고 있다면...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겠지





- 덧붙이며


연출 방식이 다채롭고 흥미로우며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핀치 저택이 매우 아늑하고 예쁘다. 나도 이런 집 상속받고 싶다.


단 하룻밤의 이야기라 다양한 시간대에서 게임이 진행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집 외부를 돌아다닐 때는 대부분 어두운 시간이라 아름다운 배경 미술을 감상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


음악과 보이스 액팅도 좋았으며, 인 게임 오브젝트를 사용한 스탭롤 연출이 재미있었다.


운명을 대하는 에디스의 마음에 비추어 보면 What Remains of Edith Finch라는 제목이 정말로 근사하다.


게임만이 가진 매체적 특성을 절묘하게 활용하여 이야기의 화자와 관찰자의 시제를 우아하게 일치시켰다. 관찰자에는 플레이어와 에디스 핀치 본인, 아직 태어나지 않고 뱃속에서 엄마와 여행을 함께하는 에디스 핀치 주니어, 그리고 기록을 읽고 나서, 엄마의 묘에 꽃을 가지고 찾아온 조금 자란 에디스 핀치 주니어가 동시에 포함된다. 플레이어의 역할이 밝혀지며 모든 서사가 동일선상으로 정렬하는 순간은 굉장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최선이라는 말은 정말 좋다. 수용과 저항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어떤 태도에 대해서도 가장 진리에 가까운 단어.


리뷰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삶과 운명이라고 이름 지어진 여러 종류의 양면성들을 넘나들면서 우리는 답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온전히 흐름을 따를 수만도 없고, 무작정 저항할 수만도 없다. 믿기만 할 수도 없고, 의심만 할 수도 없다. 웃을 수만도 없고 울기만 할 수도 없다. 어떤 현상이건 보는 방향과 마음에 따라 그 의미가 결정되기에 최선이라는 태도만이 언제나 정답에 가장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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