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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Oct 06. 2023

[책]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이 소설의 약점은 장기 기증용 클론들이 인간과 너무나 똑같다는 데 있다. 그들은 인간처럼 생겨서는 인간처럼 말하고 입고 먹고 웃고 싸우며 사랑하고 성장한다. 캐시가 기억하는 지난날은 아주 작은 감각들 하나하나까지 우리의 과거와 닮아있어서 독자들은 이들이 인간인가 아닌가를 궁구할 겨를이 없다. 이런 인물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인간 사회가 장기를 수확하기 위한 클론들의 사육을 용인했다면 그것은 현재 우리가 속해있는 문명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존엄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세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차 경험했던 인간의 집단적 광기를 떠올리면 인간 문명은 이미 그런 세상을 지나쳐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듯이 어떤 목적에 의해 사육되는 가축들에 대하여 선의를 가지고 대할 수 있음은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의 전제가 결국은 합의될 수 없는 존재 간의 본질적 구분에 엄격히 가로막혀 있음으로 인해서 이러한 선의와 행동들은 미움을(혹은 오해를) 살 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타인을, 타자적 존재를 대할 때 경험하듯 이러한 종류의 선의는 그 무게와는 관계없이 결코 가장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 선의가 가장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걷고 떠들고 울고 웃으며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추억을 찾아 떠나고 또 다른 추억이 생기기를 바라마지않는 미래들이, 그래서 하루라도 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생생한 삶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삶의 시작은 그 삶의 주인에 의해 결정되진 않는다.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단지 태어났기에 살아가거나 태어난 이후부터 그 존재 의미를 겨우 찾기 시작할 뿐이다. 그런 우리가 과연 비관적 결말이 예정된 삶을 알고도 탄생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다른 무언가의 2차적 수단으로서 창조되고 필멸하는 존재라면, 더욱이 나의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 나의 잠재적 근원의 실체가 나와 다를 바라고는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도 저항조차 할 수 없다면, 삶은 좋게 말해야 비극 이상이 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내가 태어나는 것에 대한 허락을 구하지 않은 나의 창조자와 근원자에게는 저주를 퍼부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운명에 대하여 자못 초연하다. 그들은 우리의 삶을 단축시켜 놓은듯한 짧은 일생을, 우리보다 조금 더 간절히 바라는 것들을 마음에 품고 조용히 살아간다. 같은 운명을 가진 이들끼리 모여 살며 소박한 욕망들을 그다지 충족하지도 못하고, 마지막엔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시간을 조금 더 얻기 위해 작은 용기를 낸 모험을 한 것이 전부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에게 저항이나 성취를 기대하지 않고 단지 그 삶과 생각들, 의도와 행동들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와 구분되지 않는 대상을 가축으로 삼을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엄연한 인간이다. 창조적 행위가 인간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라고 해서 반드시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만이 영혼 존재의 증명일 필요도 없다. 이런 방법으로 영혼의 존재 유무를 판별하자면 지금 당장 수많은 사람이 영혼의 존재 여부를 의심받고 인간성을 박탈당할 것이다. 토미는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창조에 열중했었으나 토미가 마담에게 보이기 위해 그렸던 그림들은, 그 그림을 그리려는 동기와 행위 자체에 진정한 의의가 있었다. 그래서 캐시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와 연인을 먼저 떠나보낸 캐시의 마음에는 그렇기에 슬픔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들은 단 한 번뿐인 짧은 인생 동안 가까이에서 함께 자라고 일생의 중요한 순간에 서로의 곁에 있었음을 마지막 순간까지 감사히 여겼을 것이다.




- 덧붙이며

작품 내내 캐시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참 많았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그 말들이 오히려 적게 느껴진다.


저주임과 동시에 축복인, 삶이 가진 양면성에 대한 시각이 공교롭게도 지난 포스팅인 게임 'What Remains of Edith Finch'과 닮았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주어진 삶 속에서 우리는 행복을 얻어야 한다. 행복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 항상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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