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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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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형 Jun 28. 2020

01. 1막 1장 <나의 얘기>

Prologue


나이, 서른. 어림 잡아 보면 인생 삼분의 일을 살아온 셈이다. 길다 하면 길고 짧다 하면 짧은 그 기간 동안 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느꼈나. 자서전이라고 하기엔 걸어온 길이 짧고 얕아, <나의 얘기> 시리즈를 통해 인생이란 긴 터널의 중간평가를 해보고자 한다. 어떻게 나고 자랐는지,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했으며 어떠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왔는지, 그 관계의 깊이는 어떠한지, 지금의 내 위치와 상황은 어떠한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경계해야 하는지, 잡을 것은 무엇이며 놓을 것은 무엇인지, 연전연패하는 동안 얻은 것은 무엇인지, 반대로 승승장구하면서 잃은 건 무엇인지 등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혹시 아는가, 이 시리즈가 훗날 내 자서전의 밑거름이 될지.




1막 1장 (1991-1997)


뿌리를 찾다 보면 고향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내 고향은 어디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다음과 같다.


1.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2.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3.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그렇다면 내 고향은 태어나 7살 때까지 산 부산일까, 아니면 유학 가기 전까지 살던, 현재 가족들이 살고 있는 울산일까. 그게 아니라면 내 학창시절 희로애락이 묻어있는 영국 맨체스터일까. 주변에서 고향을 물어올 때면 어릴 때는 울산이라고 대답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상대방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곳으로 전략적으로 대답해왔다.


1991년 10월, 내가 태어난 곳은 부산이다. 4kg 우량아로, 분만 당시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의 안전과 함께 내 손가락, 발가락이 각각 5개씩 있는지부터 확인하셨다고 한다. 성격은 온순하고 순둥순둥 하여 잘 울지도 않고 가만히 누워서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봤다고 한다. 내 납작한 뒤통수는 아마 이 때문이지 싶다. 여느 아기와 다름없이 울음이 잦았던 누나와는 달리, 나는 그렇게 어머니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고 한다. 태몽으로는 전 대통령 중 한명이 방에 들어와 애국가를 완창했다고 한다.


부산에서의 기억은 별로 없다. 흐릿한 기억은 누나와의 술래잡기, 어머니랑 옥상에서 빨래 널기, 퇴근 후 아버지가 사오셨던 통닭, 동네 친구들과의 다툼, 집 앞 고추방앗간 정도이다. 지난 여름, 가족 넷이서 고향에 답사를 갔는데, 살던 집은 남아있었지만 주변 동네가 재개발 중인지라 형태는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기억 속의 집이 생각보다 작아서 놀랬고, 그걸 지켜보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잠시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누나와 나는 그 복잡미묘했을 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래도 태어난 곳이 부산이라고, 가끔 부산을 갈 때면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속 진공 상태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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