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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형 Jun 28. 2020

03. 2막 1장 <나의 얘기>

2막 1장 (2003~2005)


#1. 한국에서 영국으로, 울산에서 맨체스터로 


"영국에 가지 않을래?" 어머니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어왔다. 공기가 평소와는 달라서 진지한 분위기인지는 감지했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대충 얼버무리고 웃었던 것 같다. 사실 어떻게 이야기가 시작됐는지 기억은 없다. 대화 장소가 1층 가게 식탁이었는지, 집 부엌 식탁이었는지도. 그리고 그 날의 내 생각과 표정이 어땠는지도.


6학년 때 집 옆에 꽤 유명한 종합학원이 들어섰는데, 시험을 치고 특별반에 들어갔다. 추측건대 성적보다는 오픈멤버(?) 빨이 조금 작용한 것 같다. 가서도 남들 하는 만큼 했던 것 같고 가끔 땡땡이치고 놀러도 나갔었다(가 종종 혼나기도 했었다). 이처럼 남들처럼 학원은 다 보내셨지만, 부모님께서는 내가 더 좋고 넓은 환경에서 공부하길 바라셨을 것이다. 영어에 대한 중요성도 늘 강조하셨다. 아버지 본인이 어렸을 때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어렵게 공부하시어, 자식 교육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하셨을 거다. 현실적으로 누나는 전에 아팠던 것도 있고, 남자 넷 있는 집에 보내는 게 망설여졌으리라. 게다가 생각해보니 맨체스터 집에 방도 세 개 밖에 없었다.


당시 이모부는 교육부에 계셨는데 2년 동안 영국 맨체스터로 파견을 앞두고 계셨다. 이에 따라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영어공부도 하고 그렇게 좋아하던 축구도 실컷 하고. 달콤한 미끼였다. 또 하나의 신기한 인연은,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 바로 이모였다. 별다른 기억은 없고 내가 운동신경이 좋아서 늘 앞에 나가 이모랑 줄넘기 시범을 보였었다. 같은 학교에 동갑인 친구가 있었고, 3살 위 중학생 형이 있었다. 사실 선택권은 없었을 거고, 그렇게 갑작스러운 유학 준비를 하게 됐다. 출국 전날 집 옆 교회 목사님께서 오셔서 기도해주셨다. 책도 선물해주셨는데 비행기에서 읽고 또 읽었다. 예나 지금이나 감사한 분이다. 출국 당일은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난다. 하늘은 회색빛으로 흐렸고 사진에서 알 수 있듯 가족 모두 평소보다 상기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순재가 따라 나왔다. 전날 쓴 편지를 건네줬고 순재는 울었다(순재라는 놈은 대학을 체육교육과를 나와서 친구들 사이 억울하게 강한 이미지를 부여받았지만, 속은 여리고 따뜻한 친구다). 가게 앞에 나란히 찍은 사진을 보면, 내가 머리 하나 정도 키가 더 컸지만, 지금은 순재가 더 크다. 공항에서 생에 첫 국제선 수속을 하고 뒤돌아보니, 틈 사이로 내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어머니, 아버지, 누나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다. 좁은 틈 사이 부모님 얼굴은 슬퍼 보였다. 그렇게 나는, 익숙하고 정든 것들과 이별하고, 낯설고 두려운 영국 유학 길에 올랐다.


첫날부터 순탄치 않았다. 울산-김포-인천-파리-맨체스터 여정이었는데, 파리 공항에서 마주한 생에 첫 흑인은 날 한 순간에 압도했다. 어린 마음에, 온 몸이 공백 없이 까맣고 덩치가 큰 흑인이 무서웠다. 그 사람도 내가 신기했는지 (혹은 궁금했는지) 계속 나를 쳐다봤다. 그럴수록 나는 더 경직됐다. 여정 내내 프랑스 공항 직원이 동행했다. 프랑스 사람들의 특유의 깊은 향수 냄새가 아직도 내 코를 맴돈다. 당시 화장실이 무척이나 급했는데, toilet이라는 단어를 알고는 있었지만 긴장하여 말이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엔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동 중 화장실 표지판이 보였고 생에 첫 바디랭귀지를 사용하여 온 몸으로 절박함을 표현했다. 직원도 당황했는지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지면서 얼른 들어가라는 사인을 보냈다. 하, 중간중간 한국 직원이 인솔하여 안내했을 때 얼마나 깊은 안도감을 느꼈었는지.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올랐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옆자리 한국 아저씨. 비행 내내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계셨고 하품을 하거나 껌을 씹으면 귀가 괜찮아진다고 하셨다. 중간중간 괜찮냐고도 물어봐주셨다. 당시 미성년자라 내가 비행기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승무원이 기록했는데 (보호자에게 전달하는 게 의무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비행기에서 혼자 유학길에 오르는 어린이들을 보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괜히 질문 하나라도 더 하게 되더라.


얼마 안 걸려 맨체스터에 도착하고도 의사소통 문제로 몇 시간을 공항에 붙잡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게 문제가 됐길래 그 오랜 시간을 잡혀있었을까 생각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연락이 닿아 이미 몇 시간 전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이모, 이모부를 드디어 만나게 됐다.


반가움보다 안도감이 앞섰다.



https://brunch.co.kr/@hopeconomist/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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