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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pr 18. 2021

도마뱀이 죽었다.

키우던 도마뱀이 죽었다.

작은 바람에도 꺼질 듯  듯

바닥까지 태워야만 초연히 사라지는

촛불의 생명처럼

난 도마뱀이 자신의 삶을 다 태운 건지

태우다 만 건지를 생각하다

그의 입장에서 난 방임 또는 타살자가  것만 같아서

조금 괴로웠다.


도마뱀이 살던 집을 정리하며

청소할 때 더 이상

그의 가벼운 집을 들어 올리는 번거로움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린 나에게 놀라서

아주 잠깐 얼굴이 화끈 거리는 것을 참았을 뿐이다.


죽음이란 그런 것일까?


움직이지 않는 식물일수록 쉽고

작은 곤충일수록 그다음으로 쉽고

징그럽거나 나에게 유해하면 더더 죄책감 없이

크기가 점점 커질수록 어려워지는


결국 사람과 비사람과의 거리는 그 정도 일지도 모른다고

그의 화려했던 유연함이

한 줌 손 안에서 꼭 쥐면 바스라 질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지는 죽음 앞에서

난 고작 그렇게 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4804815&memberNo=203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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