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안반데기 배추밭같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험지를 경작한다
가진 거라곤
갈고리 모양 맨손 덩굴손
삽 한 자루 없어도 잡풀을 갈아엎고
기댈 잡목이라면 무엇이든 붙잡고
나사를 돌려가며 친친 감는다
낭떠러지 앞에 서서
모두가 절망을 떠올릴 때
역발상을 하여
밑바닥에서 거꾸로 질기디질긴 구명줄 엮어
맨 처음 길을 내는 무혈점령 착한 영토는
칙령, 칡이 주인이다
자수성가한 내면의 고통이
그윽한 향기로 터져버린
칡꽃 몇 송이
허공을 개척한 늙고 병든 손이
꼬옥, 쥐고 있다
- 시집 <푸른발부비새 발자국> 수록
해발 1100m 고원에 자리 잡은 안반데기는
화전민들이 개간한 땅입니다.
돌투성이 비탈밭을 맨손으로 일궜다지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험지를
경작하는 손은
맨손,
갈고리 모양으로 오므려야만
무엇이든 붙잡고 치우고 생존할 수 있습니다.
칡
덩굴손을 자세히 보셨나요?
감아쥘 듯 동그랗게 오므리고서
허공을 건너뛰어 의지할 대상을 찾고 탐색합니다.
태종 이방원 <하여가>에도 칡이 등장하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칡은 얽힘의 속성 때문에 바닥을 메우고
경사지대도 곧잘 올라가서
그물을 엮듯이 공간을 메워 위장합니다.
밑바닥과의 괴리가 있는 것이죠.
칡이 만든 영토를 맨바닥이라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진심이 진심이 아닌 거죠.
칡뿌리를 캐거나 꽃을 따려고 가까이 다가갈 때
칡의 윗부분을 보고 발을 내디뎠다간
불상사가 생깁니다.
인간으로 치자면 팀워크에 능하고
조직력 결합력이 우수합니다.
대인관계도 원만하달까요...
잘 비비적거리고 의지하고 점성 붙임성이 좋은
마당발인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자신의 이권을 챙겨 이리 본들 저리 본들
칡이 치렁치렁 휘감은 그야말로 칡 벌판이 됩니다.
그런데 식물 칡의 생존법을 바라보면
착하기만 합니다.
무일푼 맨몸으로
한여름에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땀 흘린 근면함 덕분입니다.
낭떠러지 길을 아무나 내나요?
밑에서부터 구명줄을 엮어 살아내는
투철하고 끈질긴 자수성가형!!!
등산 하산길에 어디선가 그윽한 향내가 나서
두리번거렸더니
공중에 대롱대롱 자줏빛 꽃이 성큼 자라 있는 겁니다.
아카시아 내음과 비슷한데 더 깊고
완숙한 여인의 향기 같았어요.
꽃을 키운 이파리는 너덜너덜, 해져
늙고 병든 손이 이만큼 자란
자신의 성공을 자축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