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물에 달린 열매들 더 달고, 더 연하네
지하 수맥 펌프질하던 심줄 말라비틀어지는데
최후 생존자들 먹여 살리려고
곰삭은 햇빛 안간힘을 다해 보듬어주네
고운 색소에 깃든 끈기 중도 포기를 모르네
첫물 풋내음도 상큼하고 탐스러우나
밍밍 싱겁네
11월 화단에 핀, 꽃들은
붉은 잉크가 마를 때까지 의사소통을 원한다네
꽃에게 체념이란 불가하네
12월 뜨락에 핀 해바라기를 본 적 있는지
황도의 빛을 다 긁어모아서 활활 타오르는 그녀는
적도 중심에 선 아마존의 여전사였다네
첫눈 맞는 진달래를 본 적 있는지
딸내미 목화 솜이불 싸 보내는
친정 어미 마음 같았지
가을과 겨울 사이
아주 잠시 늦봄이 한 번 더 다녀감을
아시는지,
꽃눈들은 참 영민하기도 하지
한해 갈무리하는 텃밭에 서서 살갗이 쪼그라든
방울토마토를 갓 따서 먹어본 적 있는지
톡 터지던 그 맛, 일품이었다네
산골 사과나무들은
얼어 죽기 직전까지 단맛을 익힌다네
첫사랑이 여물어 끝사랑 맺을 동안
바보처럼 우두커니, 간직한다네
_시집 <푸른발부비새 발자국> 수록
갑자기 추워진 날씨,
가을 절반이 통째 도둑맞았습니다.
시월이 시월 같지 않습니다.
푸르른 하늘을 잔뜩 기대했는데..
쌀쌀한 일교차 요즘 날씨는 이른 봄을 닮았습니다.
까칠한 살갗에 느껴지는 체감기온을
꽃들도 아는가 봐요.
길을 가다 드문드문 활짝 핀 철쭉을 보노라면
영민하게 보입니다.
냉기가 후려치는 대기 속에 서서
끝물 드는 열매들은 끝까지 단맛을 연습하고 익힙니다.
한해 갈무리하는 텃밭에 서서
볼품없이 시들어가는
쪼글쪼글한 방울토마토를 따서 깨물었던 맛
톡, 터지면서 내어준 과즙은 진짜 달콤했었죠.
우습게 보아 넘길 게 아니란 걸요..
꽃들은 어떻구요.
그들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색을 움켜쥡니다.
돌담 아래 금잔화, 맨드라미들이
어떻게 시드는지 살펴보아요.
최후의 순간까지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고운 빛깔 그대로 사라지려 합니다.
체념 불가입니다.
소백산 자락 영주 부사 주왕산 일대 청송 꿀사과들은 첫서리를 맞고서야
단맛의 품격을 완성합니다.
꽃샘추위와 맞닥뜨리며 깨어난 봄꽃들의 첫사랑이
한해 마지막 예고편 첫서리를 만나
끝사랑을 보았기에 열매를 완성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