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태우며

by 남연우

_남연우




맘껏 살다가 미련 없이 떠나네


갈색 정직한 떡갈잎 하나,

노란 새침데기 은행잎 둘,

여태 고운 사랑의 혈서를 날리는 단풍잎 셋


성격대로 살다 간 사연의 빛깔은 달라도

동그라니 잎맥 오므린

추억의 흑백사진 속을 나뒹구는

마로니에 잎들도 긁어모아


하늘을 향한 제단을 쌓고

담벼락 마지막 잎새들

일제히 농익은 추파를 던질 때


용틀임하는 하얀 혼불의 연기 끝자락

알싸하게 묻어나는 한해살이 짧은 생의

못다 한 이야기를


허공의 바람이 가로채 가는

입동 저녁,


옷깃으로 배어드는 진한 낙엽의 체취를

솔가지로 긁어모으며


아직 내려놓지 못한 자존심의 파편을

깊이 그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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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산책하고, 등나무 의자(여름 의자)에 앉았다가

한기가 들어

어제는 종일 앓아누웠습니다.

오늘 문득 내다본 바깥 풍경이 색채의 마술을 부려놓았습니다.

언제 저렇게 단풍이 들었을까?

두 눈을 비비고 바라봅니다.

하룻밤 새 벚나무 잎들이 주황빛으로 물든 것 같습니다.

아주 천천히 점묘법 변신을 하고 있었는데

눈치를 못 챈 겁니다.


"낙엽을 태우며"

이 시는 2집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꽃>에 들어있습니다.

요맘때 생각이 나는 시죠.

어떤 과장된 술수를 부리지 않고

단번에 써 내려간 시여서

애정을 가지는 시랍니다.


떡갈잎, 은행잎, 단풍잎, 느티나무잎,

편지지만 한 마로니에잎

빛깔과 사연이 다 다른 잎새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사람의 인생 말미를 떠오르게 합니다.

미련 없이 훅- 떠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과업일지요.


예전에는 들판에 한해 농사를 끝마치고 나면

짚더미를 거두고 난

검불을 여기저기서 태웠습니다.

하늘을 나지막이 오르다 방향을 틀어 흩어지는 저녁연기는

집집마다 열린 창 틈으로 들어옵니다.

어린 내 마음에도 스며들어

정신을 훈제시키는 것 같았죠.

그 냄새를 맡아보고 싶습니다.

구수하면서도, 잡념을 태워주는 향불!!


긁어모은 낙엽을 태울 때도

쌉싸름한, 신령스러운 연기가 솟아오릅니다.

연기는 그들의 못다 한 이야기

희로애락

숱한 사연들을 안고

용틀임 발버둥 쳐도

허공에 찬 바람이 속히 데려갑니다.

흩어지고 맙니다.


그을린 잔불을 긁어모으며

내 안에도 불쏘시개를 던져둡니다.

쓸데없는 상념 잡념 걱정

다 태우게요.


한 해 끝으로 다가갈수록

자신만의 정화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비워진 나와 타인의 세상 속으로

내리는 흰 눈, 축복입니다.




20201031_125502.jpg 담벼락에 그린 담쟁이의 영토, 담쟁이는 훌륭한 예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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