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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Feb 20. 2024

봄 마중

-2월, 제주의 봄

안개비가 간간이 지나가는 2월은, 언제나 목마르다.

물을 여러 잔 들이켜 마시고 상큼한 천혜향을 깨물어 봐도 해갈되지 않은 목마름이 식도 끝자락에 매달려 갈증을 유발한다. 문을 열고 발짝만 떼면 봄까치꽃이 헤실거리고 뒤뜰에는 은은한 매화향이 스며들어 반길 것만 같다. 작은 언덕을 넘어가면 거기 환한 봄이 웃으며 기다리고 있을 같아서 버선발로 나가보는 것이다.

중부지방에 사는 나는 이 지독한 봄의 노스탤지어를 불치병 다스리듯 앉아서 인내할 여력이 없다.

봄 마중하러 남쪽으로, 남쪽으로 바다 건너 훌쩍 떠나본다.


여행 일정을 잡지 않았다.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어디로든 가보고 싶었다.

봄내음이 물씬 나는 곳으로, 꽃물이 어른거리는 어디로든 묻히고 싶었다.

이런 성급한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기내에서 토마토 주스를 테이블에 쏟고 말았다.

무릎 위에 올려둔 가방 주머니에 마스크를 넣으려던 찰나 테이블을 건드렸고 도미노처럼 빨간 액체가 담긴 종이컵은 보란 듯이 가볍게 쓰러졌다. 접이용 테이블 사이로 흐른 액체가 내 아이보리색 바지에 얼룩을 남겼다.

이런, 순식간에 붉은 동백꽃 한 송이 바지에 피었다. 


금잔디가 핀 새별오름은 이 암묵의 계절 수도권에서는 만날 길 없는 푸른 하늘을 지평선으로 그려내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형의 완만한 곡선이 파도를 타듯 고공 속으로 넘실거린다. 저 곡선에 올라서면 바람의 음률에 깃든 이 몸이 휘파람 소리 내며 두둥실 떠오르겠지..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탈출된 원대한 시야는 결박된 쇠사슬을 투둑 끊어내며 멀리멀리 달아나도록 해방시켜 줄 것이다. 

저 지평선에 발을 딛는 순간 새파란 하늘 사람이 된다. 


과연 그랬다. 저지대 파릇파릇 돋은 새싹들이 봄의 행진에 편승 오름 아래부터 풀물이 들어 발 빠르게 올라올 기세다. 오르내림이 동일한 어느 지점에 서 있더라도 떠도는 흰 구름에 실려 기분 좋은 웃음이 배시시 터져 나온다. 도시에서는 지어지지 않던 무공해 웃음이 영월 청령사터 나한상과 닮아있다.



봄이 실바람 타고 착륙한 2월 제주는 두꺼운 패딩을 벗으라고 한다.

분홍색 꽃이 만개한 홍벚나무 앞에 서서 겨울차림 내 모습이 퍽 낯설다. 

북쪽 바다 건너온 겨울 사람의 옷차림을 무색하게 만드는 나무는 벚꽃 피는 사월을 두 달가량 당겨놓은 특별한 시공간의 마법을 부린다. 내 집 앞 벚나무는 아직도 겨울잠에 푹 잠들었는데 말이다.



동해 수평선을 보며 자라나서 나름 수평선을 해석하는 탁월한 감각이 있는 편이다.

('내 안에 수평선이 있다' 책도 그간의 사유를 거쳐 완성되었다)

수많은 바다를 보아왔다. 그 많은 바다 중에 제일가는 바다는 언제나 동해라고 생각했다.

지중해 아드리아해는 정말 싱거워서 못 봐줄 지경이었다. 바람이 잠자는 미몽의 그 바다는 미동이라곤 없는 잔잔한 호수 같아서 우유부단한 내면을 매일 똑같이 비추는 거울이었다. 물 빛깔도 심드렁한 회색 그런 바다는 바다축에 끼지 못할 하급이었다. 


수평선이 밀어내는 흰 파도가 모래 해변을 두드리며 하루에도 열두 번 무드가 바뀌는 동해는 실시간 살아 움직이는 바다, 짙푸른 물결 일렁이며 관조하는 내 마음속으로 아무 저항 없이 물길을 여는 바다, 그리하여 부유하는 감정의 쓰레기들 퇴로를 연 썰물이 되어 멀어지는 바다, 때로는 다가서기 무서운 그 바다가 제일 좋았다.


아, 함덕 바다를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두 눈을 비비고 바라본 아침 함덕 바다는 너무나 평화로운 색채의 향연을 펼쳐 보였다.

그저 고요하게 겹겹이 수평의 물결이 찰랑이는 푸름의 그러데이션!! 

격렬함을 평정한 인생의 노년에 이르러 마주친 사랑이 저런 모습 아닐까.

온갖 고행을 거쳐 마침내 피안의 기슭에 이른 수행자의 내면이 저런 모습 아닐까.


고상한 푸른빛 사색이 밀려오는 은모래 해변을 거닐며 내면의 바다를 새롭게 정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어떤 투쟁이나 조급함이나 보챔이나 다그침을 내려놓고 평안하게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겠다는..

저 멀리서 천천히 찬찬히 다정하게 밀려오는 함덕의 푸른 물결이 부산한 일상을 뒤로하고 제주에 떠밀려 온 내게 이 아침 어떤 깨우침을 일깨운다.



동백(冬柏)이다.

엄동설한에도 붉은 꽃을 피우는 동백, 이 이름이 개운치 않다.

꽃의 생김새와 열정을 보더라도 이 이름은 영 어울리지 않는다.

동백, 어감은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시뻘건 립스틱을 대충 칠한 투박하고 무딘 촌부를 막 부르는 이름 같다.

윤기 나는 진초록 모피 코트에 붉은 실크 스카프를 여러 겹 두른 이 섬세한 귀부인을 어찌 동백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바닷가에 피는 해홍화, 이 이름이 어울린다. 


나무는 동백이라 부르고 꽃은 '해홍화'라고 부르자. 

영어 이름 카멜리아(Camellia)도 새침하고 아찔하고 강인하고 세련된 여성적인 이름이다.

검은 돌담에 내려앉은 봄햇살에 기대어 울긋불긋 꽃물 든 봄동산을 거닐며 봄기운에 취한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인 눈발 사이로 발간 볼 수줍게 내민 겨울 카멜리아는 또 얼마나 고혹적일지.. 봄을 미리 만끽한 이젠 꾸물거리는 봄을 중부지방에서 느긋하게 기다릴 있게 되었다.


우리의 겨울은 한창 오기를 부리며 여러 차례 꽃샘추위를 데려오겠지만 아름답고 부드러운 꽃들 앞에 허물어지고야 만다. 한 떨기 연약한 꽃잎들이 날 선 동장군의 창살을 맨몸으로 막아내며 피를 흘리는 최전선 꽃들이 동백이다. 동백이 우수수 떨어지고 나면 봄은 비로소 안심하고 낙천적인 향연을 펼쳐 보인다.



영주산에 올라 저 멀리 눈 쌓인 한라산과 성산 일출봉, 우도를 내려다보았다. 누에고치 모양 해안선을 품고 어디서나 꿈을 꾸는 제주의 오름과 산들을 올라서 보면 모난 성정의 한 귀퉁이 무너져 내린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시림 가는 길에 눈도장 찍었던 어떤 식당을 목적지 검색해 보았다. 리뷰도 없고 메뉴 소개도 없다. 그런데 시선을 잡아끌던 곳이었다. 반대편 차선을 지나가며 다시 눈길이 가닿았다. 분명 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급유턴 식당 입구로 들어서서 점심 주문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젠틀한 사장님은 오늘은 시식하는 날이라며 다음 주부터 개업한다고 말하였다.

자리를 안내해 주면서 고기국수 얼큰국수를 무료로 드린다고 말하였다.


'이 무슨 행운인가?' 

얼떨결에 앉아서 무료로 식사가 가능하다는 말에 황송하였다.

태어나서 무료로 식사를 했던 적이 있었던가?

한 끼 밥에 지불하는 응당한 대가를 공짜로 건너뛴 기억이 없다.

공짜 절밥을 얻어먹은 기억도 없고..

사골 육수와 채수로 만든 뽀얀 고기국수는 처음 맛보는데 잡내가 없고 담백하였다.

발효 보리밥이 들어간 얼갈이 물김치, 깍두기, 칼칼한 배추김치는 까다로운 내 입맛에 착착 붙었다.

친절하신 사장님은 재빠르게 비워지는 얼갈이 물김치를 듬뿍 담아 주시면서 맛이 어떤지 물어보셨다.

말끔히 비운 그릇과 함께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리액션을 해주었다.

"국수인가갈치인가 식당 사장님, 대박 나세요!"


이 행운을 맛보려고 제주로 오는 기내에서 토마토 주스를 쏟았던 건 아니었을까.

긴 터널을 지난 이제부턴 풀밭 위에 방목하는 자아를 꿈꾼다.

어디에도 메임 없이 자유로이 훨훨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나를 놓아주고 싶다.

오우아(吾友我), 내가 나를 벗 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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