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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Aug 17. 2024

여름은 보라색 꽃이 핀다

                                         _남연우




길가에 버려진 녹슨 가마솥 위로

구릿빛 직사광선 달구던 여름이

뜬금없이 소낙비 퍼붓는다  

   


금세 열기 식은 솥단지에

이끼 낀 계곡물이 넘쳐흐른다

     


변덕 심한 하늘이 짜낸 선홍색

푸른꽃게 집게발이 물어다 준 푸른색을

막 비 그친 팔레트에 고이 개어    

 


큰제비고깔 금꿩의다리 솔체꽃

배초향 순비기꽃 자주꽃방망이

무릇 비비추 용담꽃이

미리내 별꽃 사이 속속들이 피어났다     



섣부른 열정은 쉬 짓물러버리고

냉가슴 앓다 보면 피지도 못하는



한여름 밤의 서늘한 꿈에 기대어

저 홀로 피어나는 보라색 여름꽃들     



바람길이 막혀 고장 난 창문 아래

들숨 날숨 희비 섞인 모스부호 타전하듯

방울벌레 마지막 한숨이 끊어질 동안    

 


멍든 꽃, 한 송이 끝내 피우지 못한

나는

비바람에 녹슨 가마솥이었다   




      


휴가지에서 만난 보라색 여름꽃들,

붉은 태양보다는 서늘한 그리움으로

파란 바다보다는 그윽한 기다림으로

피어난 여름꽃들...


금꿩의다리
자주꽃방망이
순비기꽃

 

큰제비고깔
아침 광선이 무르익기 전 딸칵 꽃등불 밝힌 나팔꽃, 이보다 아름다운 기상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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