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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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판문점에서는 휴전 협정이 계속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계속되는 전쟁에 부담을 느낀 국제연합군과 공산군은 비밀 접촉을 거쳐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첫 정전회담을 열었다. 이어 1952년 7월 개성에서 본회담이 시작되어 같은 해 10월 판문점으로 회담 장소를 옮겼으나 전쟁 포로 문제 등으로 인해 9개월간 회담은 중지되었다. 간혹 지나는 길에 민가 혹은 소대장실에서 몰래 그들의 노동 신문을 슬쩍 가져와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는 여러 사람과 머리를 맞대어 전황을 분석하였다.

그 말이 하나둘 입으로 전해져서 우리들 모두 알게 된다.

비행기 공습이 뜸하면 휴전협정이 다 된 것인가. 그러다 또 공습이 개시되면 휴전협정은 잘 되지 않았는가. 다각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우리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던 겨울 한창 추운 때 이동한다는 것이다.


행선지는 압록강변 만포진이라는 곳으로.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을 치켜세워 포효하는 형상의 자강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국경선으로 유배 가는 심정이 이러할까. 왜 무엇 때문에 최후방으로 우리들을 끌고 가는 것일까.


전쟁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지 우리들의 안전보다도 그들의 안보유지 상 불가피한 선택인 걸까.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점점 멀어지고 우리들의 신변은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는 위험 속으로 떠밀리고 있다. 어떤 상황에 맞부딪혀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우리들의 얼굴에 절망의 그림자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이 마당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나. 후방으로 이동한다면서 놈들은 우리에게 이발기, 면도기, 앞에 두르는 광목천을 나눠주면서 머리를 모두 깨끗이 깎으라고 한다. 저마다 불안해하면서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서둘렀다. 한 줄로 세워놓고 총살을 당하더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떳떳하게 대한의 남아로서 뼈를 묻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순서대로 조발하고 마지막으로 나의 소대 순서가 되었다. 제멋대로 자라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을 모두 빡빡 밀어 이발하고 면도하였다. 털에 가려졌던 얼굴이 앙상하게 드러나자 슬픔이 배가된다. 푹 꺼진 눈두덩과 광대뼈 아래로 함몰된 두 뺨에는 청춘의 기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오랜 입원생활 끝에 병상에서 걸어 나온 환자의 창백한 얼굴들이다. 머쓱해하며 민머리와 턱을 훑어내는 손길마다 박탈감이 허공을 미끄러진다.

이발 기구는 나의 소대원이 보관하고 이동하였다. 평북 재동에서 만포진까지는 수백 리 길 걸어서 갔다. 각자의 소지품은 따로 없다. 추운 겨울이니 옷만 입고 가면 되는 것이요, 배낭 따위는 있을 수 없고 홀가분한 몸이다. 놈들의 일정 따라 민간 부락에서 자고 지급되는 식량으로 숙소 주인이 해주는 밥을 먹으면 됐다. 닷새쯤 걸려 가는 길이라 몸도 마음도 지쳐있고, 발바닥은 부풀어 물집 투성이다. 핏물이 나온다.

찔끔찔끔 나오는 핏물은 스스로 지혈되는 것이 아니라 추위에 얼어붙는 것 같다. 핏물에 젖어드는 양말 때문에 발가락은 시리다 못해 감각이 무뎌지고 보온 기능을 잃어버린 민머리는 찬바람이 감돌아 시큰시큰하다. 만주 벌판에서 불어오는 북풍에 개미허리를 굽히면서 변방으로 향하는 행렬은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만포진으로 행진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이발 기구를 보관하고 가던 동료가 내 옆으로 다가와서 말하였다.

“부소대장 동무, 오늘 아침에 면도칼을 숙소 주인장에게 주고 담배와 바꿔 왔소.”라고 하면서 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다.


나는 놀라웠다. 그것을 주고 나면 도착지에서 사후 처리는 어떻게 감당할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엇보다 부소대장인 나에게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저 혼자 감행해놓고 사후 보고라고 하는 것이 괘씸하기도 했다.

“동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오. 그깟 담배도 필요 없으니 알아서 하시오. 모든 책임은 동무가 지란 말이오.” 나는 화를 내면서 말했다.

“부소대장 동무 심정은 알겠는데 이동하느라 이 북새통에 누가 보관했는지 알 바 없지 않소. 걱정 말고 피워보시오.”

딱한 이 노릇을 어떻게 수습할까. 대담한 동료의 배포에 소심한 내 성격이 한 수 아래 먹혀들어간 건지 나는 피우고 보자는 꾐에 휘말리고 말았다. 이 사실이 발각되는 날에는 동료가 처벌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핑계 대면서. 또 한편으로는 생사를 기약할 길 없는 마당에 담배 한 개비에 벌벌 떨고 싶지 않았다.

고생고생 끝에 만포진에 도착했다.

이북 땅 새로운 곳에 도착할 때면 어김없이 그곳의 지형과 풍물에 대한 호기심이 포로 신분을 망각할 정도로 왕성하게 작동하였다. 해 질 무렵 압록강은 모습을 감추었고 건너편 만주 땅도 캄캄한 장막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단행함으로써 조선을 개국한 역사적 장소인 압록강에 다다르니 감회가 남다르다.

어느 인심 좋은 집 조그만 방에 세 사람이 노곤한 몸을 눕혔다. 아침밥을 먹는데 두부 반찬이 나왔다. 고향을 등지고 처음 구경하는 두부를 보자마자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치웠다. 이상하다 생각은 했으나 주는 대로 먹고 나니 이발기를 보관해온 그 동료가 넌지시 말한다.

“동무, 오늘 아침 두부 반찬 참 맛있지 않소. 이번에는 이발기를 주고 반찬을 잘해달라고 부탁해서 특별히 나온 것이오.”


기가 찬다.

이 사람이 누굴 죽이려고 이러나. 면도칼은 실수로 잃어버렸다고 둘러댈 수 있지만 이발기까지 분실한 책임은 회피할 수가 없다. 결국 나도 한통속이 되어 담배 피우고 좋은 반찬에 밥을 먹고 난 후라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같이 당하는 수밖에 없다. 차례차례 팔아치운 동료가 야속하다.

뱃속을 뒤집어 두부를 다시 게워낼 수도 없고 무거운 심정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전달이 왔다. 숙소 준비가 늦어 이삼일 현지에서 쉬게 되었으니 이탈하지 말고 지시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는 것이다. 차라리 잘 되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따신 방에 그대로 누워 잠을 청했다.

한방에 기거하는 그 동료는 또 일을 저지른다.

“야, 이건 바꿔 먹을 수도 없고 뭐하지. 에라 모르겠다. 손수건이나 만들자.”


이발할 때 앞에 두르는 광목천을 잘라 손수건을 만든다. 이제 이발 기구 세트는 자취도 없이 깨끗이 처분되었다. 잠은 깨었으나 밖으로 나갈 생각도 없이 이틀간 방 안에 고여 있었다. 압록강 풍경도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발각될 일, 소대원의 잘못은 내 잘못이다. 천근만근 조여 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길 없다. 그렇다고 부소대장 책무를 게을리할 수 없다. 처벌은 달게 받되 내 할 일은 똑바로 하자고 용기를 내었다.


지급받은 식량은 주인집에 주고 우리는 식사를 제공받았다. 자연스럽게 남한의 생활상을 묻고 답하는 가운데 북한 동포들은 무한의 동경심으로 감회 깊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차제에 남한의 승리로 통일조국이 되어 일제의 학정, 김일성 공산집단의 폭정에서 풀려나 자유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참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길 소망하였다.

공산주의 체제는 민초들의 뿌리까지 가닿을 만큼 막강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부 인사들의 체제 보존 수단에 불과하여 얄팍한 두께로 들떠있는 양철지붕 같은 것. 변화의 바람이 불면 언제든 휙- 날아갈 가벼움처럼 보였다. 인간의 행동을 억압하고 사유를 통제하여 획일적으로 길들이겠다는 망념은 선사시대 이래 그 어느 왕조 국가에서도 행해진 바 없지 않나. 인간 본성은 하늘이 내려주는 천성이다.

우주 만물에 깃든 품성이 고유한 특징으로 나타나게끔 타고난 창의성은 공기와 같아서 아무리 질긴 인공 그물로 투척해본들 구속할 수 없는 것이다. 피보다 진하다는 그들의 이념도 엉성한 거미줄 위에 잠시 놀다가는 시간의 유희 같은 것, 낡아빠진 걸레 자루 같은 사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무 싹 자르듯 잘라버리는 전체주의가 구한말을 이어서 나라를 뺏기고 한반도 이북에 정착한 사실을 태조 이성계가 안다면 위화도회군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겼을까. 무심히 흘러가는 압록강은 역사를 심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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