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새들에게 안부를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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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집단 수용시설에서의 생활은 여러 가지 고충을 야기하였다.

시설이라야 방공호 아니면 허름한 탄광 사택 또는 학교였다. 한 번은 무더운 여름 특식으로 돼지고기가 지급되었다. 금방 잡아서 지급된 돈육이지만 냉장시설이 없다 보니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녁식사 때 국물로 배식되었다. 나는 그 당시 육식을 하지 못 했다. 먹고 나면 배가 아프고 콩알 같은 두드러기가 나서 가렵고 속이 답답하였다. 몸을 생각해서라도 먹어야 마땅하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내 몫으로 나온 국물을 동료에게 덜어주었다.

그다음 날 새벽 잠결에 주위가 온통 난리다.

“아이고, 배야” 하면서 화장실로 내닫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식중독이었다.

바로 전날 저녁에 먹은 돈육이 원인으로 그걸 먹은 사람들 대부분이 식중독에 걸린 것이다. 그 와중에 약이 어디 있나. 마침 부근에 돌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아기 주먹만 한 돌배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는데 누구 입에서 나온 건지 식중독에는 돌배나무를 달여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하여 그 돌배나무가 몸살을 당하였다. 신기하게도 그날 정오가 되면서 차츰차츰 회복세를 보였다. 나는 육식을 못 하는 탓으로 그 고통은 면하였다.


기약 없는 포로 생활은 결국 영양실조로 이어져 여러 증세가 찾아왔다.

정강이부터 발등까지 누르는 족족 패인 피부가 누렇게 혈색을 잃고 올라올 생각을 않는 것이다. 서서 노동을 많이 한 탓으로 하체에 순환이 안 돼서 그렇겠거니 싶어 잠잘 때 베개를 받치고 잤다. 일시적으로 부기가 빠졌지만 눌러보면 마찬가지다. 수시로 다리에 쥐가 내리고 쿡쿡 쑤시면서 힘이 빠졌다. 이런 증상은 나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서도 나타났다. 비타민 부족으로 생긴 각기병이었다. 싱싱한 야채와 과일은 구경도 못 하는 형편, 묘안을 짜냈다.

일하던 밭에 가서 꺾은 수수 송이를 상의를 벗고 그 속에 싸서 땅에다 태질을 했다. 떨어진 생 수수를 긁어모아 손아귀에 움켜쥐고 입에다 털어 넣고는 꼭꼭 씹어서 풋내 나는 즙을 삼켰다. 다행히 치유되었다.

또한 야맹증에 걸린 눈은 밤의 변별력을 상실하여 더듬더듬 장애물 투성이로 만들었다. 건강한 눈은 어둠에 곧 익숙해져서 올빼미처럼 동공이 커지면서 사물을 식별할 수 있지만 야맹증은 어두운 상자 속에 가로막힌 느낌이다. 낮에는 눈곱이 끼고 어두워지면 아지랑이가 이는 것처럼 사물이 겹쳐 보이거나 흐릿해지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불빛이 두꺼운 유리관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번들거리며 굴절돼 보이기도 하고 심하면 그것마저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어지러워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지금까지는 민간요법에 의지하면서 그럭저럭 병을 다스려왔지만 이 병은 치유하는 약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짐승의 간을 먹으면 먹은 양만큼 즉시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돼지 간이 조금 나왔다. 조금씩 나눠주는 간은 많이 먹을 수도 없었다. 나도 몇 조각 먹고 난 그날 저녁부터 신기하게도 시력이 밝아지고 다시는 그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집단 수용시설에서는 목욕도 문제였다.

가까운 곳에 개울이 없고 목욕시설도 없다. 세탁, 목욕은 엄두도 내질 못 했다. 사람은 털 달린 짐승보다 위생에 더 취약하다. 후각은 무뎌져서 악취는 새롭지 않았다. 피부에 기생하는 각종 흡혈 생물들이 번갈아가며 달려드는 통에 건지러워 긁다 보면 염증이 생기고 짓물러 종기가 되면 고름이 나오는 게 문제였다.

발적이 심해지면서 벌겋게 부어오를 적에는 건들지 말고 가만 놔두어야 한다. 딴딴한 땡감이 부드럽게 숙성되듯이 딱지 아래로 노랗게 농이 고이면서 화농 되면 터뜨려서 360도 사방을 조이면서 눌러주면 화산 분출하듯 고름이 쏟아진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며칠 두면 속 깊이 있던 염증마저 곪아서 토한다.

종기 가장 아래 자리 잡은 근은 염증의 뿌리로 좁쌀같이 생겨서 탱글탱글한데 근까지 빠져나와야 그 부위 상처는 아물게 된다. 만약 근이 남아있으면 염증은 계속 재발한다. 근을 제거하는 것은 염증의 확인사살인 셈이다.


우리의 몰골은 꼴사나웠고 서로의 눈동자가 거울이 되어 비춰주는 것이 내 모습의 전부였다. 어쩌다 비라도 많이 내리면 빗물을 받아 간신히 빨래를 했으나 목욕물로 쓰기에는 수많은 인원의 수요를 해결해줄 만큼 충분치 않았다. 여름 어느 날 반가운 소낙비가 드디어 쏟아졌다.


함성을 지르며 바깥으로 뛰쳐나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훌러덩 벗고 소낙비를 흠씬 맞으며 땟국물을 벗겨냈다. 오랫동안 억눌린 억압에 대한 자유를 갈구하는 우리들에게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낙비는 해방이요, 축복이었다. 놈들도 이런 우리를 제지하지 않았다.


이곳 재동에서 가을을 나고 겨울철로 접어드니 추위는 맹렬하여 쩍쩍 들러붙는 쇠붙이처럼 강하였다. 해를 넘기는 세모가 가까워지니 고향 생각 간절하다. 차가운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의 날개가 부럽다. 통제된 땅은 발길을 구속하지만 하늘 영역은 금을 긋거나 철조망이 없기에 새들의 비행은 저토록 자유롭다. 밤하늘 별자리를 보면서 방향을 잡아가는 새들의 감각은 길 잃을 염려 없이 안착한다.


나의 귀소본능도 저들 못지않건만 처량하다. 부디 내 고향으로 날아가서 내 부모형제에게 안부를 전해주길 빌어본다. 보름달이 뜨는 달밤이면 달님의 환한 얼굴에 그리운 편지를 쓴다. 내가 쳐다보는 저 달을 아버지와 형님도 바라볼 것이므로 ….


‘아버님, 저 잘 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지금 저 달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 걱정하시다 병날까 걱정입니다. 꼭 목숨줄 보존하여 돌아갈 터이니 건강하게 계십시오!’


이곳의 생활도 오래가지 않는다. 놈들은 우리들을 자주 이동시켰다.

때로는 노역장으로, 때로는 집단 수용소로 그들의 명령에 따라 우리는 정처 없이 끌려다닌다. 전쟁 포로의 인권은 유린된 지 오래 학대당하는 한 무리의 동물처럼 우루루 몰려다닐 뿐이다. 우리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주어진 임무와 목표 수행을 위한 기계적 부품으로 취급당한다. 존중되어 마땅한 한 개인의 인격체가 누려야 할 권리를 일찌감치 포기한 우리는 생각의 자유로운 스위치도 꺼버렸다.


오직 생물학적 감각을 곤두세워 생존하고 버티는 일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단순해지는 것. 극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법이다.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이 전쟁이라는 비상상황에도 적용되었다. 다만 죽는 그 순간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인간의 양심,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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