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무연탄 탄광지대로서 우리들의 숙소는 광산 사택이었다.
사택 바로 뒤에서 질 좋은 무연탄이 생산되나 전쟁 중 채탄이 중단되고 방치돼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작업이 없는 대신 집단 수용되어 놈들의 정치적 강연과 공산주의자로 전환하도록 세뇌교육이 실시되었다. 작업하는 것보다는 몸이 편했다.
자유민주주의 투사인 우리들에게 주체사상을 강연하는 것은 쪽빛 천연염색 옷을 입고 있는 우리들의 옷을 강제로 벗겨 새빨간 염색을 새로이 하라는 거나 다름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그런 짓을 감수하겠는가. 들은 귀를 씻어내며 시간을 때우는 거다.
때는 가을철이라 옥수수와 수수밭 추수를 거들었다. 산간 오지 자갈밭에서도 잘 자라는 옥수수는 건치처럼 가지런히 알이 박혀서 실하였다. 새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산자락에 펼쳐진 붉은 수수밭은 허기진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채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펼쳐 보였다. 선들거리는 바람을 따라 반짝이는 자줏빛 공단끼리 펄럭이는 소리는 묘한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남녀가 만나 처음으로 손을 잡을 때 살갗 스치는 느낌 같기도 하고 구르는 낙엽이 저 멀리 사라지면서 내는 이별 노래인가 하면 긴긴 겨울밤 댓잎을 흔드는 추운 바람 소리가 난다.
탈곡한 수수 송이는 빗자루를 만들고 무릎 꿇은 병사처럼 남아있는 수숫대도 헛되지 않게 베어다가 방안 돗자리를 만들었다. 추수하러 동원된 우리들은 옥수수를 따서 한 곳에 가득 모아놓고 수수도 잘라 한 곳에 모아둔 뒤 수숫대 속에 옥수수를 집어넣어 둘둘 말아서 지게를 짊어지고 왔다. 놈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수숫대 짊어진 사람을 가운데 세우고 그 외 사람들은 그 주위를 에워싸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재빨리 옥수수를 골라내어 방안 천장에 널빤지로 만들어놓은 비밀공간에 넣어두었다.
부엌에는 항상 탄불이 타고 있었고 자그마한 솥에 옥수수를 넣고 삶는다. 먹을 때는 문밖에 보초병을 세워놓고 나머지 일원은 방에서 삶은 옥수수를 먹는다. 주린 배를 채우면서 들킬까 염려하며 재빨리 갉아먹는 옥수수는 정말 달고 구수했다. 큰 송이 하나면 금세 배가 불렀다.
식사는 주로 수수밥이 나왔는데 찰수수라 밥을 해놓으면 찰기가 입에 착 감기면서 잘 넘어갔다. 취사 당번은 이것을 조금씩 아껴가며 모아두었다가 명절이 되면 꼭 찰수수밥을 해주었다. 취사장의 취사 당번은 물론 우리 동료였다. 이곳 주위에는 중국인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밤마다 감시하던 초병이 새벽 4시가 되면 철수한다. 이 틈을 타서 우리 동료 중 2명이 철조망을 뛰어넘어 중국인 무밭으로 갔다. 거기서 무와 파를 뽑아서 한 아름씩 안고 돌아와서는 인삼보다 좋다는 가을무를 생으로 우적우적 씹어 먹거나 방안 천장 비밀공간에 넣어두고 저녁 식사 시간대 맞추어 솥에 넣고 푹 끓인다. 조금씩 주는 수수밥에 달큰한 뭇국 국물을 떠 맛있게 먹으면 요기가 되었다.
모진 곳에 내팽개쳐진 험난한 삶이지만 태풍의 눈처럼 잔잔한 고요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경계와 감시의 눈길 속에서도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고, 여러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라 별난 재주도 많다. 비록 훔쳐 오기는 했지만 동료들 건강에 보탬이 되도록 신경을 쓰는 가운데 없는 담배도 구해온다.
물자가 극도로 제한된 수용 생활, 포로들에게 생활물자가 제대로 공급될 리 없다. 그중에서도 기호품인 담배는 지급이 일시 중단돼 있었다. 방 안에 있다 보면 인민군 장병이 모퉁이를 지나면서 피우는 담배 냄새가 바람을 타고 구수하게 스며들었다. 동료 중 누군가가 멀찍이서 그 뒤를 따른다. 담배 기근이 있는 것을 아는 그들은 피우다 만 담배를 땅에 던지고 발로 쓱쓱 비비고 간다.
그러면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주워 와서는 대충 흙을 털어내고 종이로 길게 말아 분대원 전체가 둘러앉아 한 모금씩 빤다. 그야말로 제맛인 담배를 욕심을 부려 두 번 빨게 되면 사정없이 따귀가 올라가고 언쟁이 벌어진다. 울다, 웃었다, 이런 것이 우리 생활의 전부였다. 달리 웃고 사는 방도를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우리 소대에서 부소대장을 선출해야만 했다. 소대장은 인민군 소위이고 부소대장은 우리 동료 중에서 선출하는 일이 난제였다. 그들에게 잘 따르면 동료가 고달프고, 동료들을 따르면 저들에게 미움받는 처지라 아무도 내가 하겠다고 자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명을 받아도 거절하는 판국이다. 나는 소대원 전체의 권유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부소대장에 임명되었다.
동료들은 나 아니면 안 된다고 막무가내다. 썩 내키지 않는 감투를 쓸까 말까 망설이면서 나는 동료들에게 내 말에 순종해줄 것을 조건으로 승낙하였다. 사실 이 자리는 사람 됨됨이를 알고 선택을 잘해야만 했다. 잘못하면 소대원 전체가 정신적 고통뿐 아니라 처형 위기까지 당하는 막중한 임무였기에 성격, 인품, 대인관계 등 원만해야 했다.
내가 속해 있는 1분대 바로 옆방에 소대장실이 있었다.
중대에는 두 사람의 중대장이 있었는데 정치부 중대장과는 자주 모임이 있었다. 정치부 중대장은 호방한 인물로 별다른 의제도 없이 부소대장을 불러놓고 담배도 권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로 2시간 정도씩 자리를 함께 하였다.
이런 때면 나는 소대원을 생각해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가는 꺼서 호주머니에 넣는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면 네댓 개비 담배가 모아졌다. 숙소로 돌아오면 다들 잠들어 있었으나 마음씨 좋은 경남 통영 출신 박○○라는 친구가 잠을 자지 않고 내가 오길 기다렸다. 문을 열면 알아차리고 “부소대장이가?”라고 묻는다.
“그래, 오늘은 아무 소득이 없다.”라는 내 말에는 귀담아듣지도 않고 한 모금 달라고 한다. 피우다 꺼놓은 담배꽁초를 캄캄한 어둠 속으로 손길을 내밀면 그는 용케도 받아 들고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뻐하면서 입에 문다. 구수한 담배 향기에 잠자던 사람들이 잠꼬대를 하는 건지 “응~ ”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눕는다.
나는 “그렇게 잠꼬대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라고 소리친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가 일시에 벌떡 일어난다. 그럼 두 개비 정도의 꽁초로도 방 안은 담배 연기로 가득 찬다. 이 당시 담배는 우리에게 기호품이 아니었다.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지급되는 음식으로도, 동료 간의 우정으로도, 애국심으로도, 아름다운 경치로도 채울 수 없는 허전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각자의 가슴속에 간직된 향수를 달래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리움이었다.
무난히 소대 운영이 잘 되어 가던 어느 날, 소대장이 나를 소대장실로 불렀다.
두 사람은 마주했다. 경북 김천 출신 소대장은 의용군으로 인민군에 입대하여 소위로 복무 중이며 성격은 깐질깐질하고 웃지도 않는, 모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 자가 나를 어떻게 보았는지 다짜고짜 캐물었다.
“부소대장 동무, 국군 장교 출신 아닙니까. 바른대로 대시오.”
나는 완강히 부인했다.
“아닙니다. 저는 장교도 하사관도 아닙니다. 이등중사입니다.”
“여기서 거짓말하면 알지 않소. 똑바로 대시오.”
살모사처럼 매정한 눈빛으로 쏘아보며 밀어붙이는 그의 말투는 집요하여 없는 사실도 거짓말로 둘러대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일 년 반 정도 놈들의 눈치 속에 살다 보니 나 또한 호락호락 잔꾀에 넘어가지 않았다.
“제가 장교 출신이라면 어떻게 스무 살에 시골 제 고향에서 징집되어 입대하였겠습니까.”
“그런데 부소대장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소대원들이 너무 잘 따르고 있어. 그 배경이 뭔지 이실직고해.”
“일찍이 할아버지 슬하에서 한학을 배운 경험 때문입니다. 인격체로 대했을 뿐 아무런 권모술수도 써본 적 없습니다. 알지도 못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누를 끼치는 행위는 절대 용납 못 한다. 내 지켜볼 터이니 행동 조심하시오. 가보시오.”
내 음성은 평소 우렁차고 한 번 듣는 사람에게는 믿음을 주는 좋은 음질이다. 나는 음성으로 상대의 기세를 제압하였다. 이후로는 그런 심문 아닌 심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