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은 계속되고 그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아무리 해도 비행장으로는 쓸 수가 없었다. 우리들의 작업이 끝나면 땅 다지는 차가 와서 평평하게 다진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아군의 폭격기가 와서 폭탄 투하를 한다. 우리들은 멀리서 이것을 목격한다. 사방에서 저들의 대공포 화염이 하늘에서 작열한다. 그러나 대공포 사정거리가 B-29에 닿지 못한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염천에 맞불을 놓는 대공포 불꽃, 지상에서는 폭탄이 터져 뭉게뭉게 흙먼지가 치솟아 오른다. 천하를 진동하고 지축을 흔드는 “꽈당탕, 꽈당탕”
무엇이 난리겠나, 이것이 바로 난리였다. 정신력이 약한 사람이라면 180도 홱 돌아버리는 난리 중에 난리다. 폭격이 끝나고 나면 움푹 꺼진 구덩이 위로 흙먼지가 내려앉을 동안 아주 조용해진다. 우리들은 찢길 듯이 아픈 고막을 진정시키고 구덩이를 다시 메우기 위해 서른 명이 밤을 새우면서 흙을 져다 메워도 그 구덩이 하나 메우지 못한다. 이렇게 몇 날이고 계속해서 작업해놓으면 또다시 폭격이 개시된다.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아군은 공중 촬영으로 작업 진도를 파악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의 생활은 1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그해 여름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인민군 대위 한 명이 배낭을 짊어지고 물을 먹기 위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헉헉대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중키의 남자는 특유의 위압감을 대동하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하여 차렷 자세를 하고 서 있었다. 황갈색 피부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나이의 얼굴을 설핏 쳐다보니 희한하게도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내 고향집 이웃 동네에 살던 나보다 서너 살 위 뉘 집 장손이었다. 해방 후 좌우익 세력이 두 패로 갈려 극렬한 세 확장 싸움을 할 때 이 분은 좌익 세력의 주모자인 아버지를 모시고 맹활약하던 사람이다.
나라 질서가 잡히고 좌익세력 탄압으로 입지가 좁아지자 산으로 피신해서 빨치산이 되었던 거다. 빨치산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48년 여순 사건과 1950년 6.25 전쟁을 거쳐 1955년까지 활동했던 공산주의 비정규군을 말한다. 빨치산이 빨갱이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 즉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정규군을 일컫는 말로 유격대와 가까운 의미이다. 이것이 이념 분쟁 과정을 통하여 좌익 계통을 통틀어 비하하고 적대감을 조성하는 용어로 표현된 것이 빨갱이다.
이 분이 어떤 경로로 월북해서 현재의 위치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 앞에 나타난 이 사람을 보는 순간 놀라웠고 마주 대하기가 겁이 났다. 좌익세력에 가담한 그들이 친일파다, 자본가다 하여 무산대중의 권익을 옹호한다며 때려 부수고 파괴하고 난동을 부릴 때 우리 가문은 동요 없이 우익 노선을 지키면서 무언의 대항으로 싸워 왔다. 지금은 전쟁 중 이북 땅 깊숙이 끌려온 내 정체를 안다면 같은 고향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상과 이념이 다른 나를 어떻게 조치해놓고 가려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잠시 솔직히 반가웠다. 나는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저분은 어쩌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몸이다. 꿈속에서도 먼 길을 더듬어 언제나 찾아가는 고향길은 나침반의 빨간 자침과 같아서 자석처럼 절로 끌어당겨지는 무의식이다. 무의식을 부정하는 의식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나는 저 형님의 친인척에게 소식이나 전해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반가이 대하였다. 그렇다고 쉬이 경계를 풀 수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형님! 저 알아보시겠습니까.”
갑작스러운 만남에 그는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다.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집중하여 나를 쳐다본다.
“아니 이게 누군가. 어째 이런 데서 다 만나나.”
나를 알아본 그는 악수를 건네며 고향 소식을 묻는다.
“여기서 만나다니 반갑네. 우리 집은 어찌 됐나.”
“형님 아버지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한쪽 눈이 실명된 후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고, 시집간 누이 한 명도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나는 소문을 들은 대로 말해주었다. 몰락한 가문의 장손은 무표정한 얼굴로 내 얘기를 듣더니 차츰 기억력에 탄력이 붙는지 눈매가 날카로워지고 있다. 굶주린 짐승처럼 고향 소식을 먹잇감처럼 포획한 그는 질문의 대상을 나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해서 여기에 있는 거지?”
나는 속으로 진땀을 빼면서 거짓말을 둘러댔다.
“6.25가 터지자 미군의 폭격으로 부모님이 사망했습니다. 원수를 갚기 위해 바로 의용군에 입대하여 월북하였습니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한결 부드러워진 그는 가진 게 없다면서 배낭에서 담배 한 포갑을 꺼내 준다.
“너무 상심 말게. 더 얘기 나누고 싶지만 나도 바쁜 길이라네. 잘 지내게.”
어깨를 툭툭 치고 그는 급히 길을 재촉하여 떠났다.
환상적인 사탕발림에 현혹되어 선택한 공산주의자의 뒷모습은 왜 그렇게 허탈해 보이는지 야심 차던 그의 예전 모습은 이미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어떤 생각과 느낌이 그를 이 나무 그늘로 이끌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립던 부모형제의 슬픈 소식을 거두어 가는 운명적인 시간을 그는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념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초조한 그는 타향의 그늘 속에서 수척하게 늙어갈 것이다. 고향 형님이라고 주고 간 그의 담배가 긴 여운을 남긴다.
그 후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의 친누이 동생을 만나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또 세월이 흘러 남북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할 때 당국에서 연락이 없었느냐고 물어보니 없었단다. 혈육이라곤 남은 여동생 하나뿐인데 이북의 오빠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렇게 멀어져 갔다.
황주하면, 떠오르는 명산물이 있다. 그것은 사과다.
이곳은 넓은 평야지대로 토질이 좋고 일조량이 풍부하며 비교적 서늘한 기후 탓에 사과밭이 수두룩하다. 크기도 알맞고 색이 짙은 빨간색이어서 미관상 아름다운 것이 특징인 황주 사과는 우수한 품질과 새콤달콤한 맛을 자랑하며 명성을 알리고 있다. 현지 민간인으로부터 들은 말이 있다.
“동무들, 여기 사과가 왜 맛 좋은 줄 아시오.”
“놀라지들 마시오. 반동분자들 숙청하고 나면 그 시신을 사과밭에 매장해서 토질을 개선한다오. 사과 굵기 좀 보시라요. 어른 주먹만 하지 않습니까.”
사과 품질의 비밀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그 사람 말을 듣고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국가기반 산업으로 육성하는 사과에도 사람의 골분을 이용하는 것이다. 식사 당번으로 들판을 오가며 사과밭을 지날 때마다 군침을 흘렸었는데 …
사람 피를 먹고 자란 매혹적인 붉은 빛깔의 사과가 갑자기 악마의 과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간악한 뱀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인간의 원죄를 짓게 만든 것도 선악과 즉 사과였다. 이제 아무리 탐스러운 빛깔로 유혹해도 꿀꺽 침 삼킬 이유가 없게 되었다. 우리들은 결국 그 맛 좋은 명산물을 자의든 타의든 한 입 깨물어 보지도 못하고 이곳을 떠나 평북 재동이라는 곳으로 또다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