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되는 날 집합과 함께 만포 국민학교로 들어갔다.
전쟁은 최후방도 예외는 아니어서 폭격으로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유리창은 깨진 파편만 드문드문 박혀있었다. 출입문은 가마니로 대충 바람막이를 해놓았고, 교실 마룻바닥은 마른 억새풀을 깔고 그 위에 역시 가마니로 깔아놓았다.
옛말에 문틈으로 새어드는 찬바람은 황소바람이라 했다. 문틈이 아니라 바람이 불면 가마니를 벌렁벌렁 헤집고 그 사이로 기운 센 황소들이 질주하듯 들어왔다. 떠돌던 만포 바람이 전부 여기로 몰려들었다. 바람의 눈은 호시탐탐 빈틈을 노린다.
험준한 산맥을 넘고 너른 들판을 휘젓다가도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훨씬 더 매섭고 힘이 세다. 파랗게 질린 우리들을 향하여 실컷 야유를 퍼부으며 날을 겨누는 칼바람은 햇빛에도 아랑곳없이 기세등등하여 교실을 자기네 안방처럼 들락거렸다.
얼마나 추운지 밥통에 밥을 받아오면 각자에게 나누기도 전에 밥통에서 밥이 얼어붙고 국이라고 주는 것은 얼음을 녹인 물같이 차다. 찬밥에 얼음국을 먹고 나면 전신이 ‘덜덜’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온다. 푸르둥둥 낯빛으로 한참을 오그리며 떨다 보면 체온으로 누그러진 음식이 그제야 소화되는지 차츰 속이 편해진다. 밤이 되면 불 밝힐 초 한 자루, 기름 한 방울 없다. 야간공습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강제로 불을 끄는 등화관제를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누우면 냉기가 스며들어 잠이 오질 않는다. 살얼음판 위에 가마니 한 장 깔고 자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나 혼자만의 체온으로는 땅속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다스릴 수가 없다. 몸으로 스며드는 살인적인 냉기는 바늘로 콕콕 찌르듯 껍데기뿐인 살을 뚫고 뼈마디를 아리게 한다. 이대로 자다가는 냉동인간이 되어 아침이 밝아 와도 영영 눈뜨기 어려울 것이다.
동료 두 사람씩 같이 누워 서로 꼭 안고 한 사람의 솜 외투는 허리 아래로 덮어 소매를 묶고, 또 한 사람의 솜 외투는 허리 위로 덮고 소매를 묶어 꽁꽁 싸맨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간절한 일심동체이다. 이마저도 태양열의 따스한 온기 조금 남아있는 저녁때 잠시 유효할 뿐 자정이 지나가는 한밤중 밑으로부터 솟아나는 적대적인 냉기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발이 시리다 못해 저려온다. 동토의 긴긴 겨울밤을 하루하루 지새우는 일이 지옥이었다.
압록강 연안에 위치한 만포진은 맞은편에 중국 지린성 지안시를 마주하고 있는 국경의 요충지이다. 지안과의 사이에는 철도교가 놓여있고 압록강 상류 지역에서 뗏목으로 떠내려 보내는 원목을 제재해서 철도를 이용하여 수요지로 공급하는 목재 집산지이자 교통의 요지이다. 연평균 기온은 6.5˚c, 1월 평균기온이 -14.4˚c라고 하니 얼마나 추운 지역인지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나의 젊은 혈기와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필생의 굳은 의지 하나 촛불 심지처럼 꺼져가는 생명에 불을 붙이면서 육신을 지탱하고 있다.
며칠 후 나무하러 간다고 모이라고 한다.
교실 한가운데 반 잘라놓은 드럼통을 난로라고 하면서 땔감을 마련하러 간다는 거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하였는데 다행히도 압록강변으로 끌고 가더니 빙판 위를 걷게 하였다. 숙소인 만포 국민학교는 언덕에 위치하여 거기서도 압록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강 건너 만주 땅은 그리 멀지 않게 보였다. 국경을 가로지르는 압록강은 백두산 천지 부근에서 발원하여 직선거리로 400km를 흘러 황해로 빠져나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강으로 강폭이 굉장히 넓을 것이라 짐작하였는데 그렇지 않다.
건너편 만주 땅 민가 마당에 널린 하얀 빨래들을 보니 한만 국경선에 선 내 마음속에 무한한 감회 샘솟는다. 그 옛날 만주 여진족과 접해 있어서 여진족 통역관이 상주해 있었다는 만포진 시내는 조용하고 여기도 공습으로 파괴된 잔재물이 음산한 골격을 드러낸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석벽을 뚫고는 동굴을 만들어놓았는데 공장은 전부 그 속에서 가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만주 땅에서 달려오는 기관차는 숨소리도 가쁘게 압록강 철교 위를 넘어 만포진 구불구불한 육로길 아득히 재를 넘기 위해 몇 량의 객차를 수송하는 기관차 두 대가 앞뒤에서 당기고 밀고 겨우겨우 넘어간다. 전쟁을 치르는 물자를 비축하기 위해 북한은 중공으로부터 전략물자를 지원받고 있고, 인해전술을 동원한 중공군도 참전하고 있으니 엄청난 물량이 만포진 한만 국경으로 넘어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압록강 빙판길을 걸어 어느 지점에 이르자 민간 부락이 나타났다.
뉘 집 마당에 한가로이 토종닭이 걸어 다니고 삼베옷을 해 입는 삼을 여러 꾸리 만들어서 처마 끝에 매달아놓은 모습이 보였다. 우리 한민족은 어딜 가나 생활상이 대동소이하다. 별안간 정겨운 고향집 마당에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리운 부모형제 나를 반가이 맞아들이겠지. 아, 저절로 끌어당겨지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 의아하다.
평화로운 고향 전경은 전쟁을 모른다. 모이를 쪼는 암탉은 둥우리에서 알을 낳고 베틀은 멈춤 없이 실을 자을 것이며 저물녘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누가 매 끼니를 수발하는 아녀자에게 죄를 물을 것인가. 그것은 제 갈 길을 가는 하늘의 해와 달에게 죄를 묻는 것과 같다.
전쟁은 남의 것을 무력으로 빼앗는 욕심과 살상 더하기 천지를 더럽히는 악랄함이다. 그 죗값은 열 번 고쳐 죽어도 헤어날 길 없다.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모든 발전을 멈추고 일백 년이 걸리는 우회로를 걸어가야 하며, 집단의 광기를 제어할 수 있는 이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강력한 지도자가 배출되어 평화를 실현하여야만 한다. 우리 민족에게 부족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훗날 역사는 현명하게 말해줄 것이다.
여기서 땅가시와 덤불, 생나무를 해서 짊어지고 귀로에 섰다. 군데군데 얼음덩이가 엉켜 짚더미처럼 쌓여있는 곳이 있다. 상당한 두께로 언 얼음이 깨져 강물에 떠내려온다. 한 군데에 걸리면 뒤에서 떠내려오는 유빙이 같이 엉겨 붙어서 빙산을 이룬다. 꼬마들이 힘껏 달려와서 말타기를 하는 것처럼 장난스럽다. 새봄 따스한 입김이 불어줄 때까지 어깨를 들썩이며 저렇게 갇혀 있으리라. 압록강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