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난로용 화목(火木)을 구하기 위해 인근 야산으로 인솔되어 갔다. 여기서 각자 화목을 해서 다시 집합하라는 명령과 함께 해산시킨다. 사방으로 흩어져서 화목을 수집하던 중 놀랄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골짝은 남한에서 끌고 온 정치 분야의 저명인사들을 수용시켜놓은 곳이다. 인솔자는 이 사실을 몰랐는가 보다. 사전에 알았다면 우리들을 이곳으로 인솔해올 리 없다. 먼저 화목을 하러 온 납북인사와 포로들 간에 상면이 갑작스레 이루어진 것이다.
서로서로 손을 잡고 남한의 소식, 납북인사들의 생활상 등 주고받는 대화 속에 마치 몇십 년 만에 상봉하는 이산가족 현장 같았다. 그중에는 조○○라는 국회의원과 그분의 손자가 극적으로 상면했다. 조손 간의 상면이 이런 곳에서 이뤄질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으랴. 할아버지는 국회의원 신분으로 납북되어 왔고 손자는 포로가 되어 여기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 할아버지의 눈물은 위험한 사지로 떠밀려온 손자를 향한 안타까움이요, 손자는 생사를 몰랐던 할아버지를 만나 안도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몇 마디 주고받는 대화가 계속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호통 소리가 나고 총성이 들려오고 난리다.
놈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 성난 이리떼 모양 날뛴다.
이 사실이 상부에 보고되면 우리들은 죄가 없지만 인솔자인 중대장과 소대장까지는 무슨 처벌을 받을는지 알 수 없는 일. 당황한 놈들은 우리들을 집합시켜 화목이고 뭐고 다 버리고 쫓기듯 그 골짝을 벗어났다. 그 후론 다시는 상면 못 했다. 그때 그분들의 연령으로 보아 모두가 예순을 넘긴 듯하였으니 망향의 한을 품고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바로 휴전되던 해 2월 25일경으로 추산된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북쪽 8km 지점에 외귀(外貴)라는 곳이 있다. 이곳도 우리와 같이 포로수용소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유엔군의 폭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바로 이곳을 공습하고 돌아가는 아군의 전투기에 우리는 손을 들어 환호했다. 차마 포로수용소에 공습하고 가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후방의 적군에게 공습을 가하고 돌아가는 아군에게 짜릿한 승리의 쾌감이 났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큰 잘못이었다.
국제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포로수용소(P.O.W)’ 표시도 없이 적의 후방 지대에서 손을 들고 환호했으니 유엔군 공군 조종사는 우리를 적군으로 오인하고 공습의 대상으로 삼을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우리는 전시 군사상 이유로 적에게 체포되어 적의 수중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군인이지 범죄자가 아니다. 억울하게도 우리 동료들은 목숨 하나 보존해서 살아 돌아가려는 꿈을 가진 죄밖에 없는데 한순간 아군의 공습으로 이슬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로부터 1주일 후 3월 3일, 그날도 나는 여느 날과 같이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났다.
‘오늘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구석자리에 앉아 잠을 자고 싶다.’
밥을 다 먹고 오전 첫 시간에 강의가 시작되었다. 교실 한가운데 반 자른 드럼통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생나무로 불을 피우니 잘 탈 리 없다. 생나무의 습기가 다 날아갈 때까지 난로 구실을 못하는 그 둘레에 동료들은 명당자리라고 몰려 앉는다. 탈 듯 말 듯 인색하게 온기를 내뿜는 난로 주위 1미터 반경을 넘어서면 어느 자리든 시린 발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춥긴 마찬가지다. 연기에 시큰시큰한 눈을 비벼가며 눈물 반, 콧물 반 교실은 실속 없는 훈제실 같다.
나는 아침식사 때 생각난 대로 무리에서 동떨어져 구석자리에 혼자 앉아 강의를 받는다. 눈을 감고 반쯤 졸려가면서 어느덧 한 시간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되었다. 우리들은 쉬자고 하고, 강사는 15분 더 연장하자고 하고, 실랑이 끝에 5분만 더 연장하기로 하고 첫 말이 나오는가 싶은데 “쌩- ”하는 굉음과 함께 공습이 시작되었다.
그간 수없이 공습을 받아온 우리. 소리만 듣고도 바로 내 머리 위에 비행기가 내리 꽂히면서 공습해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놀란 닭 모가지처럼 길게 뻗어 내밀면서 각자 피할 자세에 들어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서서 뛰었다.
출입문 쪽으로 가야만 바깥으로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간 “꽝”하고 전멸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무릎이 꺾이면서 뛰던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먼지가 확- 일어나 숨통을 막는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날개를 펼치고 덮치는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잠자코 끌려가는 수밖에.
그런데도 내 의식은 또렷이 살 길을 찾고 있었다.
옷깃으로 입과 코를 막으면서 주위를 살피는데 “따라락- 따라락- ”기관포를 쏘는 소리가 들렸다. 일차에는 폭탄으로 파괴하고, 이차에는 달아나는 사람들을 향해 기총소사로 살상하는 것이다.
아, 이제는 죽었구나.
폭탄 투하에는 살아남았으나 기총소사에는 피할 수 없이 죽게 되는구나. 적기 아닌 아군기에 노출될까 봐 두려워 바들바들 떨었다. 한동안 그렇게 죽음과의 사투를 벌였다. 다행히도 기총소사는 몇 발을 쏘고는 아득히 폭음이 멀어진다.
휴우, 이제는 살았다. 살기가 가득한 하늘을 바라본다.
이상하게도 공습으로 얼마나 큰 인명피해를 입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돌아가는 아군기를 향해 원망과 저주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에서 죽는다 해도. 이 모든 책임은 김일성 도당에게로 향하는 불타는 증오심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쪼그리고 앉은 주위는 마치 가위로 원을 그리면서 오려낸 것처럼 나무토막 하나 티끌 하나 내 몸에 닿은 것이 없다. 신기하다.
어떤 신묘한 기운이 나를 감싸고 보호해준 걸까.
일어서서 무작정 운동장을 향해 뛰었다.
얼마간 뛰다 보니 발이 얼어 터질 것 같았다. 3월 3일 야속한 눈은 와서 쌓여있고 목숨을 건진 나는 맨발로 뛰고 있었다. 죽음과 맨발 사이 아주 긴 시간이 흘러간 것 같았다. 매캐한 연기가 잦아들면서 난롯불이 제대로 붙기 시작했고, 이제 그만 쉬자던 동료들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한데 한순간 죽음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동안의 폭격에 수도 없이 대피하던 반사 신경도 피할 수 없는 촉각을 다투면서 춘삼월의 공습은 새하얀 눈 위에 뜨거운 붉은 피를 뿌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