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뚜막에서 지새우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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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꼬박 밤을 새운 그 아침부터 작업반이 구성되어 높은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고 일부는 하산하여 집 짓는 기초 작업을 하였다. 재목은 모두 집을 짓기 위한 큰 나무를 벌목하는 일이어서 고되었다.

나는 다행히도 전에 익힌 밥 짓는 일을 하게 되었다. 취사반장 두 사람이서 서른 명의 식사를 해결하였다. 산에 올라 나무하는 것보다 쉽고 몸도 편했다.


이곳에서는 중대 특무대장은 남한의 선임하사관과 같은 직책이다. 하루 세끼마다 식사 전 검식을 하는 일이 특무대장의 역할이다. 매일같이 하는 것이고 자주 접촉을 하게 되고 보니 이 사람은 해방 전 서울에서 소극장 배우로 일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인간적으로는 매우 가까웠다. 다양한 표정을 지을 줄 아는 그는 공산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유쾌함을 가지고 있었다. 말투도 부드러워서 누구라도 경계를 풀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배우라면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무대 위에서 살아보았을 텐데 어떤 이유로 인민군에 가담하게 된 걸까. 골고루 나누어 다 같이 잘 살자는 구호가 배고프고 가난한 그를 현혹한 걸까. 아니면 강제로 의용군에 동원되어 놈들의 꼭두각시놀음을 하고 있는 걸까. 아무튼 정형화된 틀의 구속을 싫어하는 배우의 특성으로 볼 때 그의 직함 중대 특무대장은 한정된 기간 동안만 수행하는 연기 활동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훗날 그는 자신의 재능대로 무대 위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그즈음 또 한 가지 일이 생겨 우리 동료들에게 무서운 압력이 가해졌다. 바로 ‘반미구국투쟁’이라는 단체를 조직해서 놈들은 우리에게 모두 가입하라는 것이다. 알고 보면 이 단체를 조직함으로써 좌우익 사상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동안 놈들은 우리에게 이념교육으로 사상 전환에 전력을 기울여왔고, 그 결실의 실마리가 이 단체 조직으로 매듭짓는 것이다.

예상한 대로 휴전되어 자유 대한의 품으로 돌아가더라도 빨갱이 색깔 분자로 활동하도록 조직적으로 명찰을 달아주는 작업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생각은 다르다. 고스란히 놈들의 계략에 잘못 휘말리면 집으로 가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결과가 될 것이요. 간다 할지라도 본의든 타의든 이 조직에서 활동하고 보면 나의 사상이 좌익으로 표현되는 것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된다.


또 이 조직에서 열성분자로 활동하면 놈들은 완전 사상전환자로 보고 포로의 명단에서 빼버리고, 반대의 입장에서 가입을 안 하게 되면 대중선동자로 낙인찍어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신변에 밀어닥치는 위험한 광풍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간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로 친밀했던 동료 간에도 서로 무서운 눈총으로 노려보고 움직이는 행동 하나하나 예의주시하게 된다. 물론 이 조직 위원장은 우리 동료 중에서 선출하게 되었고 그 이하 부서의 책임자도 우리 동료들이다. 이런 와중에 상당수가 가입되어 미가입자에게 가입을 권유하고, 조직 본부에서는 한 명씩 불러가며 가입하라고 위협을 준다. 끝내 거부할 때는 집단 폭행이 행해진다. 나는 물론 가입을 거부하고 내가 맡은 취사반장으로 열심히 일할 뿐이다.

그해 3월경 어느 날 저녁 식사를 준비하였고 검식을 마치고 나가던 그 특무대장 동무가 나를 돌아보고는 “남동무, 동무들은 이제 집으로 가오.” 하고는 나가버린다.


나는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다. 그날 밤 특무대장 동지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잠을 설치고 말았다. 나는 생각했다. 오늘 저녁에는 다시 한번 물어보리라. 그래서 계획을 세웠다. 같이 일하는 취사병에게 오늘 저녁 검식받을 때에는 아무 말하지 말고 나 혼자 있도록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날 저녁 나는 특별한 음식을 준비했다.


사실 특별한 음식이란 그럴싸한 말에 불과하다. 부식이라고는 된장뿐인데 무엇으로 특식을 만들 수 있겠는가. 우렁각시가 나타나더라도 방법이 없다. 없는 가운데 정성을 들여 특식을 만들었다. 콩기름에 밥을 볶고 된장국에 소금 반찬 놓아줄 뿐이다. 이것도 그 당시로는 특별 요리다. 여느 때와 같이 그 특무대장 동무가 왔다. 나는 어제저녁 그 말의 진의를 캐기 위해 한결 부드러운 태도로 그 옆에 붙어 섰다.


“특무대장 동무, 어제저녁에 하신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하고는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사방을 두리번 살펴보고는 “동무들은 머지않아 집으로 가게 됩니다.”라고 한마디 내뱉고는 입을 다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너무도 간절히 원했던 반가운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 말을 나에게만 들려주는 특무대장 동무가 정말 고마웠고, 내 형제처럼 믿음직하여 무슨 말이든 따르고 싶었다. 나는 기뻤다. 그날 저녁 아주 절친한 친구를 내 주방으로 불러냈다.

나의 침실은 주방 부뚜막이다.


같이 일하는 취사병과 친구와 함께 부뚜막에 앉아 오늘 내가 들었던 비밀을 얘기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세 사람은 서로 손을 마주 잡고 환희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제 이 고생도 머지않아 종지부를 찍게 되는구나, 생각하니 마치 고향집 사랑방에나 온 것처럼 서로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그 모습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다음 날 저녁 식사 때 특무대장이 다시 찾아왔다.

무슨 말을 하다가 나를 보고는 “남동무, 반미구국투쟁에 가입했소?”하고는 가입 여부를 묻는다.

“아직 가입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뭐요? 아직도 가입하지 않았단 말이요. 미적미적 미루다가는 큰일 날 것이오. 빨리 가입하시오.”하고는 심각하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즉시 “예.”라고 대답했다.


바로 전날 그는 집으로 간다는 소식을 나에게 알려준 사람이다. 충고대로 가입하지 않고 미룬다면 신상에 좋을 리 없다. 분명 내 신변을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라고 여긴 나는 두말 않고 투쟁본부를 찾아갔다. 위원장인 우리의 동료는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반가이 맞아준다.


“동무, 어서 오시오. 안 그래도 남동무를 기다렸소. 동무는 사람들을 이끄는 재주가 탁월하오. 남동무라면 어떤 일을 맡겨도 잘 해낼 것이라 믿소. 앞으로 열심히 일해 보시오.”

그는 가입 장부에 지장을 찍게 한다.

“예.”하고 돌아서는 나의 기분은 썩 좋지는 않았다. 내 의지에 상관없이 등 떠밀려 가입했기 때문이다.

이 단체에 가입했다고 해서 나의 사상이 변한 것도 아니고 다만 집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방책이라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는다. 주방으로 돌아와서는 가까운 동료에게 가입 사실을 전하니 그 친구 안색이 변하면서 싸늘한 눈초리로 나를 본다.

알고 있다. 그런 눈으로 나를 볼 것이라고.

‘나도 너 못지않게 반공사상이 투철한 사람이다. 주위 여건상 불가피한 사정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

그로부터 며칠 후 나를 급히 중대장실에서 찾는다. 이상하다, 중대장이 왜 나를 찾는 걸까. 특별히 눈에 띄게 잘못한 일도 없는데…. 여태껏 중대장이 나를 찾은 적도 찾을 이유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가누며 중대장실에 들어섰다.


“동무, 잘 왔소. 거기 앉기요.”하면서 중대장은 자리를 가리킨다.

나는 의자에 앉아 중대장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는지 내심 궁금한 표정으로 그의 입을 주시한다. 중대장은 그의 직책에 걸맞게 날카로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는 대뜸 하는 말이 “동무, 집으로 보내주면 가겠소?”하고 묻는다.

나는 주저함 없이 “예,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놈은 두 눈을 앙칼지게 치켜뜨고는 독기를 토하면서 소리쳤다.

“뭐요? 가보기요, 가보기요.”

“동무, 골통이 썩었구만. 어서 가보기요. 마음대로 가기요.”하면서 권총을 내 가슴에 겨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어 태도를 바꾸어 중대장을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중대장 동무, 여기서 절 보고 가라면 제가 어찌 가겠습니까. 제가 하는 말은 갈 수 있는 조건하에 보내준다면 가겠다는 뜻입니다.”하고는 나는 그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진땀을 뺐다.


“동무, 사상이 투철한 줄 알았더니 의심스럽구만. 보내준다고 해도 자발적으로 남아서 민족해방전선에 앞장서야지. 안기래?”

“네, 제가 경솔했습니다.”

중대장은 겨누었던 총을 거두고는 눈꼬리를 내렸다.

“내일 이 시간까지 그동안 배운 정치 강의 내용을 공책 한 권에 복습하듯이 써오기요.” 하고는 처벌 수위를 조정한다.


나는 난감했다. 그렇게 많은 분량을 써올 시간이 없었다. 매일같이 많은 인원의 삼시 세끼를 장만하고 치우는 일은 막중하여 짬을 낼 겨를이 없었던 거다.

“중대장동무, 저는 글을 배우지 못해 잘 쓸 수 없습니다. 반만 줄여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그렇다면 내가 부르는 대로 써보기요.”

나는 문맹을 겨우 면한 것처럼 삐뚤빼뚤 그가 부르는 대로 써 내려갔다.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번복하면서 시계를 보고 있었다. 1분간 쓴 글자 수를 시간으로 계산하니 엄청난 양의 페이지 수가 나온다. 두말 말고 한 권을 써오라는 것이다.


나는 두말 않고 중대장실에서 나왔다. 그제야 다리 힘이 풀리면서 안도의 숨이 터진다. 중대장은 아주 치밀한 놈이다. 섣불리 핑계를 댔다가는 목숨이 달아날지도 모른다. 도대체 나만 왜 이렇게 불려 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며칠 전에는 특무대장이란 놈이 나에게 집으로 간다면서 반미구국투쟁에 가입을 권해왔고, 오늘은 중대장이란 놈이 나를 불러 이렇게 막 대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놈들은 나를 눈여겨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어릴 적부터 나는 총명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나의 친할아버지는 행랑채에서 서당을 운영하셨고 동네 아이들이 모여 할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그때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학문을 깨치는 속도가 빨라서 할아버지에게 칭찬을 자주 들었다. 비록 자유를 박탈당하고 포로로 구속된 몸이지만 단체 생활하는 가운데 나의 돌출한 어떤 부분이 저들의 눈에 띄었으리라.

민족해방 운운하면서 나를 그들의 앞잡이로 이용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밀려온다. 지금부터는 내 색깔을 죽이고 고슴도치 털 가라앉히듯 자중하는 수밖에 없다. 순응하는 길이 살길이다. 모든 것은 즉시즉시 형편 따라 지혜롭게 대처하자. 우선 중대장으로부터 받은 숙제가 다급하였으므로 주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공책과 연필을 찾아 쓰기 시작했다. 정치 강의 내용은 뻔하다. 이골이 나게 들어와서 줄줄 꿰는 내용을 드문드문 써서 두어 시간 만에 끝냈다.

다음날 중대장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또 무슨 트집을 잡고 나를 위협할지 걱정이 앞선다. 마침 중대장이 대대로 가는 참이라 자기는 시간이 없다면서 보초병 보고 위임하고 간다. 나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저놈이 이 과제물을 받는다면 무슨 변고가 생길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초병과 마주했다.

서 있는 초병 옆에 나도 섰다. 초병은 웃는 얼굴로 “읽어 보기요.” 한다.

나는 “예.”하고 읽는다. 읽으면서 놈을 쳐다본다.


놈이 눈을 들어 멀리 보고 있노라면 나는 공책을 두 어장 정도씩 그대로 넘기면서 느릿느릿 읽어가니 쉽게 마쳤다.

초병은 “다 읽었소?”라고 묻는다.

나는 “예.” 대답한다.

“그럼 됐소, 가기요.”

“수고하십시오.” 하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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