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숙소 앞마당에는 땅을 파서 만든 방공호가 있다.
공습 대피용 공간이라 평소에는 비어있지만 한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동료 한 사람이 무슨 죄를 범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방공호에 수감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놈들이 우리에게 처형을 가하는 유일한 곳이 이 방공호이다. 말 그대로 지하 감옥이다.
이 안에는 앙상한 소나무 가지를 삐죽이 자른 그대로 깔아놓았고 그 위에 바늘방석처럼 앉아있어야 된다. 날카로운 소나무 옹이 때문에 누울 수도 없다. 하루 주는 밥은 아침과 저녁 그것도 우리가 먹는 밥의 3분의 1. 배도 고프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캄캄한 곳이라 춥기도 하고 그 고충 말하지 않아도 안다.
취사 담당 친구와 나는 동료를 배부르게 먹이기 위해 밥을 꾹꾹 눌러 담아서 특무대장이 검식할 때 내놓았다. 직접 밥을 3분의 1로 가르던 특무대장은 밥이 딱딱하게 다져 있다며 야단을 치고는 그 밥을 비우고 새로 담아오게 하였다. 다시 퍼서 담아온 부푼 밥을 3분의 1로 나눈 양으로는 하루 종일 날 선 소나무와 싸워 이길 수 없고, 어두운 냉기에 지쳐 쓰러질 것이다. 방공호 뚜껑을 열기도 전에 동료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취사병과 나는 궁리 끝에 이 동료를 돕기로 의기투합했다. 새벽 4시 전 기상, 밥을 짓고는 양동이를 들고 우물에 물을 길러 간다. 바로 대문간에는 소대장실 보초병이 근무를 서다 새벽 4시면 철수한다. 이 시각을 이용해서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 주먹밥 덩어리를 슬쩍 방공호 안으로 밀어 넣어주면 된다.
우리는 갓 지은 맨밥으로만 주먹밥을 뭉치지 않았다. 주먹밥 덩이 속에다 된장을 박고 밥은 콩기름에 볶아 우리도 못 먹는 특식 주먹밥을 만들어 조금이라도 영양을 보충하게끔 했다. 이렇게 누군가를 배려해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우리는 평소보다 두어 시간 빨리 일어나야만 했다.
며칠 동안 계속하다 보니 주는 사람과 받아먹는 사람이 능수가 되어 새벽 그 시각이면 밥이 오는 줄 알고 기다린다. 하루는 그 시각에 친구가 밥을 주러 가니 속삭이더란다.
“동무, 몹시 추워 얼어 죽을 것 같소. 옷 한 가지 좀 갖다 주시오.”
취사병 친구의 말을 들은 나는 난감했다.
주먹밥은 먹고 나면 흔적이 없으나 옷은 지급받은 이외의 것을 입고 있으면 이것이 증거가 되어 발각되면 너도 나도 가중한 형벌에 처해질 것이다. 망설여졌다.
주먹밥을 투척해주는 일도 큰 용기를 내어 도와주고 있는데 동료는 왜 나를 자꾸 시험에 들게 하는 걸까. 모른 척 넘어가려니 지하 햇볕도 안 드는 방공호에서 밤낮으로 덜덜 떨고 있을 동료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돕자, 나중 일은 생각지 말자. 항상 그래왔듯 현재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보자.
나는 간직하고 있던 내의 두 벌 중에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내의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추워도 남이 입던 속옷은 세탁을 자주 못 하니 냄새가 나고 더럽다. 그래서 새 옷을 주고 싶었다. 광목천으로 만든 내의는 한 겹으로 된 홑옷이다. 막상 새 옷을 배낭에서 꺼내 주려니 조금은 아까웠다. 어려운 생활 여건 속에서도 나의 몸을 추위에서 보호하려고 아껴둔 건데….
그 이튿날 새벽 밥 덩이와 함께 옷을 밀어 넣어주고 돌아서는데 소대장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흠칫 놀라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소대장은 용변을 보려고 나오던 참이었다.
“동무, 거기서 뭐 하는 게요?”
소대장은 아직 잠이 덜 깼는지 게슴츠레한 눈으로 먼동이 트는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소대장동무 잘 주무셨습니까. 우물가로 지나는 길에 기침 소리가 크게 나서 잠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죽을죄를 진 반동분자가 형을 채우기도 전에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돼서 말입니다.”
“그렇소, 반동분자에게는 그런 인정도 과분하오. 어서 물이나 길어오시오.”하면서 소대장은 볼일을 보러 간다.
양동이를 움켜잡은 손마디에 식은땀이 배어난다. 아직 걷히지 않은 어둠과 그의 명료하지 않은 의식이 나를 위기에서 모면하도록 거들어주었다.
훗날 귀환해서 알고 보니 방공호에 갇혔던 그는 통역관 대위였다. 서로 만나도 그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는 데는 서운했다. 학력으로는 그는 학부 출신. 나는 국졸. 사람이 살아가는데 진실한 인간미, 참사랑으로 베푸는 도리가 배우고 못 배움에 있으랴.
어느덧 집 짓는 일은 하루가 다르게 진척되어 5월 초경 집이 다 지어졌다.
집이라야 가건물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까마득히 몰랐지만 놈들은 국제정세에 맞춰 발 빠르게 집 짓는 일을 서둘렀다. 조만간 국제 적십자사 위문단이 포로수용소로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 골짝에 허술한 집을 짓고 집단 수용시설이라 둘러댔던 것이다.
국제 적십자사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인도주의적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직으로 한국전쟁의 포로수용소 실태를 파악하고자 이북 땅 깊숙이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들은 새집으로 이주했다. 때는 초여름,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우리 중 대표를 선임해서 국제 적십자사 위문단과 면담한다고 한다. 대표로 선발되는 자는 사상적으로 무장된 자를 뽑을 것이다. 실제 우리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 그대로 반영될 리 없다. 우리들의 인권을 빼앗아간 저들을 응징하고 이제라도 자유를 돌려달라고 호소하고 싶은데 말이다.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사방 절벽으로 에워싸인 네모난 벽에 작은 숨구멍 하나 뚫리면서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는 듯 기뻤다. 그로부터 며칠 후 갑자기 이동한다고 한다. 전원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오전 내내 행군이 계속되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다시 돌아간다는 거다.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바람 부는 갈대처럼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고 아픈 다리 질질 끌면서 되돌아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날을 즈음하여 부상자 및 병자들 포로교환이 판문점에서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잠시 외부로 내팽개쳐져 외면당한 것이다. 다시 수용소 생활이 계속되었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휴전협정이 다 되었다느니 언제쯤 간다느니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만 서글프다. 나는 용기를 내어 반미구국투쟁본부를 찾아갔다. 여기에 가입했다는 사실 하나로 주위의 눈총이 따갑다. 또 머지않아 집으로 간다는 특무대장의 말도 신경 쓰이고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위원장을 만나 탈퇴하겠다고 하니 그놈의 눈총이 시퍼런 칼날처럼 무서워진다. 사람은 나쁜 감정 하나 먹는 것만으로도 그 태도가 180도 순간적으로 바뀐다.
문전에 들어설 때는 “남동무, 어서 오시오. 앉으시오.” 하면서 반가운 얼굴로 대하더니 탈퇴를 선언하자 금세 잡아먹을 듯이 날뛰며 주먹세례도 모자라 구둣발로 차고 폭언을 퍼붓는다.
인민군도 아닌 우리 동료에게서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매를 맞고 돌아왔다.
입가는 찢어져 피가 나고 눈두덩과 온몸 여기저기 피멍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만은 시원하다. 놈들이 명단에서 내 이름을 말소했거나 말거나 나로서는 탈퇴를 선언했고, 폭행까지 당하였으니 주위의 눈총이 다시 누그러질 것이다.
드디어 수용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천막이 쳐지고 손님맞이 준비가 시작되었다. 뜬소문이 아닌 국제 적십자사 위문단이 진짜 온다는 것이다. 꽉 막힌 바깥세상으로부터 귀한 손님들이 내일 온다. 한줄기 서광이 비쳐들고 있다.
* 보라색 대사 부분은 각색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