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天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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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나는 뒤돌아서서 폭격으로 폭삭 내려앉은 현장을 향했다. 방한화를 주워 신기 위해서 조심조심 신발을 찾았다. 산 자의 것이든, 죽은 자의 것이든 가리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신발을 찾아 신고 보니 주위에서 사람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한다.


첫 시간에 우리는 강의를 받고 있었으나 여타 중대는 땔감을 장만하러 산에 갔다. 폭격당하는 이 살풍경을 그들은 고스란히 산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기에는 이미 늦었고 그들도 몸을 숨기기 급박하였을 터 죽음의 방관만이 살길이었다. 자세히 보니 국민학교 교실 7칸 모두 폭삭 내려앉고 양쪽 끝에 선 기둥만 간신히 버티고 있다. 내려앉은 기와지붕을 하나하나 덜어내고 깔려있는 사람을 구해낸다. 위에서 밟으며 다니노라면 밑에서는 “아야야- ”신음 소릴 낸다.

애처롭고 불쌍해라.


너무도 무서운 일을 당하니 퀭한 눈에서는 눈물도 말라붙어 나오질 않는다. 살상의 현장을 마주 대하는 생존자들 얼굴은 백지장처럼 질려서 한 명의 목숨이라도 구해내려고 안절부절 발버둥을 친다. 부상자를 끌어다 운동장 눈 쌓인 곳에 그대로 눕힌다.


폭탄 파편이 목이나 다리 어느 부위 할 것 없이 피투성이다 보니 그 처참함 이루 형언할 길 없다. 부서진 나무 기둥에 깔려 압사한 사람, 따스하지도 않은 난롯불에 갑자기 내려앉은 마른 목재들이 활활 타올라서 새까맣게 타버린 사람, 폭격으로 사지가 절단된 사람 등 죽음도 각양각색이다. 불을 붙인 드럼통도 야속하고 악뿐이다.


80여 명 직사요, 부상자는 헤아릴 수도 없다.

나는 이 와중에 피 한 방울 피부에 묻어나는 외상이 없이 살아남았다.

누구의 도움이란 말인가. ‘천명(天命)’이었다.


이날 아침 식사 때 불현듯 생각이 떠오른 것도 천지신명이 나에게 살아남는 길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만약 구석자리에서 한 걸음 출입문 쪽으로 더 가까이 앉았어도 기총소사에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딱 그 자리를 점지해주신 대로 순명하였고, 명을 건졌다.

전쟁이 터진 이후 수없이 죽을 고비마다 천지신명께서는 시시각각 암시로서 살 길을 찾아주셨다. 우매한 나 자신의 의지로서는 내 생명 보존할 예지는 없었다.

이 폭격에서 살아남은 자 몇 사람에 불과했다.


후송하는 차에 나도 올라탔다. 여기서 먼저 폭격당했다는 외귀로 간다는 거다.

나는 큰 병원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다. 바로 실망했다. 병원은 간 곳 없고 큼직한 기와집에 놈들의 위생병이 몇 명 대기하고 있었고, 약이라고는 외상에 바르는 옥도정기라는 빨간 물약뿐이다. 우리의 눈을 임시로 피하기 위해 후송 조치는 하지만 병실도 수술도구도 없다. 가정집이 병원이 되어 마당에 그대로 눕힌다.

해는 저물어가고, 산야에는 눈이 허옇게 쌓여있고, 눈바람은 매섭도록 차다.


눈이 쌓인 마당에 멍석이나 가마니도 없이 중상자들을 뉘어 놓는다. 핏물이 번진 눈은 일부 녹기도 하고 밤이 깊을수록 그대로 얼어붙는다. 얼음장 위에 누워 초를 다투어 치료해도 살리기 어려운 부상자들은 의식을 잃고 신음소리도 없이 과다출혈과 저체온증으로 그날 밤 그 차가운 눈 위에서 싸늘한 시체로 변하였다. 폭격에서 살아난 사람들을 두 번 죽인 거나 다름없다.


원통해라.


24개월이 넘도록 살아남기 위해 모진 목숨 이어오다 휴전 5개월을 참지 못하고, 눈부신 젊음을 꽃피우지도 못하고, 놈들의 학대 속에 방치되어 죽어야만 했던 그때 그 전우들. 이름도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원혼이 되어 이승과 작별하는 그 밤을 살아남은 자들은 오열하며 지새웠다. 마당에 누워있던 동료들이 벌떡 일어나서 한 명씩 차례대로 다가와서 손을 내미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싸워왔고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한순간도 부끄럽지 않았다. 조국의 품에 안기는 그날까지 꼭 살아남아다오.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조국의 자유를 꽃피우고 누려다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도 고향산천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데려가 주오. 전우들이여, 안녕히….”

피멍이 들어 낙화한 꽃들은 이튿날 그곳 양지바른 곳에 함께 매장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날이 밝아오자마자 그곳을 떠났다. 비운의 전우들 몫까지 살아내고자 더욱더 이를 악물고 버티기로 다짐하였다. 집도 절도 없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난 산줄기를 넘고 넘어 이름 모를 어느 지역에 오니 부락이 제법 크다. 이곳에서 며칠을 쉬었다.


나는 그때 놀란 심장이 지금도 갑자기 “꽝” 소리가 들리면 깜짝깜짝 놀란다. 느닷없이 하늘에서 전투기들이 초음속으로 날아갈 때 심장이 오그라들면서 자주 놀라는 것이다. 높은 건물을 오르거나, 비행기를 타는 여행은 한사코 거부하고 본다. 한 번은 부산에서 서울 갈 일이 있어 집안 친척과 함께 김해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갈 때 처음 타는 비행기라고 좌석을 창가 쪽으로 배정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창밖으로 차마 내려다볼 수도 없었거니와 심장이 마구 뛰고 불안하여 식은땀만 흘리다 내린 적이 있다.

3.3 폭격은 내 심장 깊숙이 박혀 빠지지 않는 파편을 심어두었다.

죽음의 한복판에서 걸어 나온 경험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깨끗이 거두어갔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며칠을 쉬고 나자 다시 그 골짝으로 간다는 거였다. 또다시 험준한 산을 넘고 넘어 그 골짝으로 왔다. 이번에는 그 골짝에서 더 깊숙이 들어갔다. 깊은 산중에도 작은 부락이 있고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의 거처요, 집을 짓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밤이 되자 죽음의 골짜기를 휘감는 바람소리는 전우들의 혼령이 통곡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멀리서부터 가까이 귓속으로 훅- 파고드는 솔바람 소리에 쉽사리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내 고향 동해안 수평선에서 밀려드는 파도소리처럼 후려치다가 썰물이 되어 사라진다.


태초의 하늘이 열릴 때 새어나간 바람은 우주를 떠돌다가 집이 그리울 때 찾아오는가. 바다에서 태어난 바람은 망망대해로 떠돌고, 만년설에서 태어난 바람은 알프스와 히말라야 산봉우리로, 사막에서 태어난 바람은 뜨거운 황무지로 찾아갈 테지.

나이를 먹지 않는 바람은 언제나 젊은 육신과 정신으로 여행한다. 솔바람은 한스럽게 눈을 감은 전우들의 서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천 개의 눈과 귀를 열어 애틋한 그 마음 그리운 고향 품으로 가벼이 실어 데려가 주리. 차츰차츰 멀어져 간 바람소리에 심란하던 내 마음도 잠잠해진다.

지금쯤 내 고향 동산에는 쑥물 든 봄빛이 물오르겠지. 부드러운 봄바다 고깃배 한 척 수평선에 걸린 태양을 낚고 있겠지. 아침 안개 뒹구는 들판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겠지.

연분홍 꿈에 부푼 복사꽃 새끼손톱만 한 꽃눈 내밀겠지. 봄을 멀리하는 산맥들이 머리에 인 밤하늘 별빛은 저리도 초롱초롱 빛나건만 한 번 죽은 전우들 눈빛은 어디에서 살아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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